전시

3전시 한국인의 일생

《한국인의 일생》 전시관에서는 조선시대1392~1910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이념에 의해 아들 중심의 가계家系 계승이 가장 중요했기에, 출산 전부터 남자아이를 기원하였다. 출산 후에는 백일잔치,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무사히 성장한 것을 축하하였다.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여자는 15세 전후에 계례笄禮를 치러 어른으로 인정받았다. 혼례婚禮를 통해 가족을 구성하고, 남자는 관직에 나가거나 직업을 가져 가족을 부양하며, 여자는 집안 살림을 관장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은 그 슬픔을 상례喪禮를 통해 극복하며,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제사祭祀를 지냄으로써 자손의 번창과 친족의 화합을 도모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념과 가치관 등의 변화로 성별 관계없이 아이의 출생이 중요한데, 백일과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 성년식은 축소되었고, 혼례 또한 비교적 간소화 되었지만, 의례의 기본 구조와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혼례로 형성된 가족 이외에 가족은 구성과 개념이 다양해지고, 남녀의 역할 구분도 점차 사라져간다.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문화 또한 형식과 절차 등이 변화되었으나 조상을 기리며 후손의 안녕과 가족의 화합을 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출생

출생 전시장 전경

조선시대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이 사회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어느 집안에서나 아들 출생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삼신할머니에게 '자손번창子孫繁昌'과 건강한 남자아이의 출산出産을 기원하였다. 출산 후에는 대문에 금줄을 쳐 아이의 출생을 알리고 부정한 출입을 막았으며, 태를 태항아리나 깨끗한 곳에 묻거나 불에 태워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므로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후에 백일잔치를 열어 비로소 축하하고, 1년 후에는 돌잔치를 열어 아이의 장래를 점쳤다.
오늘날에는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의 출생을 축하하는데, 주로 병원에서 출산하면서 출산과 산후産後의 금기와 의례는 사라져간다. 백일을 기념하고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축하하는 관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교육

교육 전시장 전경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윤리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다. 국가에서는 효자·충신 열녀를 표창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다. 남자는 서당에서 글 읽기와 쓰기 등을 배우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향교鄕校나 서원書院에서 유교 경전이나 역사책을 공부하였다. 여자는 집안에서 받은 한글 교육으로 문자 생활이 가능해져, 편지를 주고받거나 한글 번역서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지식을 넓혀 갔다.
오늘날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주로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한다. 조선시대와 달리 남녀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등에서 지식을 배우고 익힌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그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마치면, 적성에 따라 대학교를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각종 시험과 평가를 치른다.

관직과 직업

관직과 직업 전시장 전경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엄격한 사회제도와는 달리 법적으로는 과거科擧 시험을 통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였다. 학문을 숭상하는 유교 사회에서는 문관을 무관보다 우대하였으며, 신분과 남녀 성별에 구분을 두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일정한 지위와 직업의 범위가 달랐다.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사회 변화에 따라 직업 제한과 같은 구분은 없어졌다. 집주릅가쾌家儈, 사쾌舍儈, 매분구賣粉嫗 등 형식은 변하였어도 조선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직업이 있었던 반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등 직업에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은 남녀 차별 없이 조건과 능력에 따라 다양하고 전문화된 일을 선택하여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년식

성년식 전시장 전경

성년식은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로 시대와 계층, 성별마다 달랐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중국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笄禮'라는 성년식을 치렀다. 남자는 20세 전후에 집안 어른들 앞에서 상투를 틀고 갓 등을 차례로 쓰며, 성인 이름인 자字를 받는 관례를 행하였다. 여자는 15세 전후로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였는데, 일반적으로 혼례로 성년식을 대신하였다. 농가의 남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마을공동체로부터 힘과 농기구 다루는 기술 등을 평가받은 후 성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의 성년식은 과거와 비교해 축소되었지만, 만 19세에 이르면 성년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고, 법정 대리인의 동의 없이 법률 행위를 행사할 수 있다.

혼례와 가족

혼례와 가족 전시장 전경

혼례 절차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가족 예절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혼례 절차와 재래의 관행이 절충되어, 신랑이 신붓집에서 혼례를 행하되, 당일 또는 3일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와 조상께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께 폐백을 올렸다. 조선시대는 가족을 형성하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였으며, 가풍을 잇고 집안의 평안을 위해 남녀의 역할과 의무가 다르게 부여되었다.
오늘날은 혼례 절차를 비롯하여 혼례 장소와 혼례복이 변화하고, 신혼여행을 비롯해 새로운 혼례풍속도 등장하였지만, 혼례의 기본 구조와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가족 구성원의 역할은 구별되지 않으며, 가족의 형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는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오래 이어져 오던 단일민족 전통성도 변화하고 있다.

수연례

수연례 전시장 전경

수연례는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잔치로, 보통 회갑回甲, 還甲 잔치를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집안 어른이 만 60세 생일이 되면, 회갑·환갑이라 하여 수연례壽宴禮를 베풀었다. 당시 60세 이상은 장수를 뜻하였기 때문에, 자손들은 이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생일을 기념하면서 수연례를 통해 효심孝心을 드러냈다. 오늘날에는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회갑回甲에는 수연례보다 가족 간의 식사, 기념 여행이 보편화 되었으며, 칠순七旬이나 팔순八旬에 수연례를 치르고 있다. 이처럼 장수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장수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의례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치유

치유 전시장 전경

사람은 나이 들면서 점차 병에 자주 걸리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병이 들거나 몸이 허약해지면 약방에서 치료하였다. 한약방에서는 주로 중국의 의학서를 참고하였지만,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보급되면서 병의 증상에 따라 침이나 뜸을 하고, 약을 조제하여 병을 치료하였다. 일부 사람은 굿이나 부적符籍과 같은 주술呪術 등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병을 예방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오늘날에는 한의학과 더불어 서양 의료기술인 양의학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진료와 치료를 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상례

상례 전시장 전경

상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탈상脫喪하는 의례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효'라는 유교적인 윤리에 따라 삼년상을 자식의 도리로 여겼다. 자식들은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 길을 화려한 상여에 태워 보냈고, 내세來世를 위해 생활 용기로 쓰일 명기明器를 함께 묻기도 하였다. 그리고 삼년상 동안 자식은 벼슬살이나 농사일도 그만두고 집에 마련된 상청喪廳이나, 산소 곁에 여막廬幕을 짓고 돌아가신 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효를 다하였다.
상례 절차와 문화는 시대의 흐름과 생활환경에 따라 많이 변화하였다. 오늘날에는「가정의례준칙」이나 장의사 등이 일반화되면서 매장埋葬, 화장火葬 등 상례가 간소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돌아가신 이에 대한 애도의 의미는 바뀌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제례

제례 전시장 전경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때마다 추모하는 의례이다. 조선시대에는 조상이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모시는 것을 최고의 '효'로 여겼다. 유교적인 제례에 따라 집안에 사당祠堂을 짓거나 벽감壁龕을 만들어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등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셨다. 후손들은 이들 4대 조상의 돌아가신 날, 설·추석 등 명절 제사를 통해 감응[感應]하였다.
오늘날은 조선시대와 달리 유교 이념에서 벗어나 여러 종교의 영향으로 효와 조상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서 제례 관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조상을 기리며 자손의 안녕과 가족의 화합을 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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