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전시영상 [온라인 전시해설]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재개관

2022-03-24 조회수 :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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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 3《한국인의 일생》주제를 새롭게 개편하여 2021년 12월 28일(화)부터 관람객에게 공개한다. 상설전시관 3은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 홈페이지
https://www.nfm.go.kr/home/subIndex/31.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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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국립민속박물관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주제를 새롭게 개편하여 2021년 12월 28일부터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관 3은 조선 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기획의 배경과 목적
그렇다면 상설전시관을 왜 개편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상설전시 간의 연계성을 높이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우리의 삶을 보다 짜임새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2018년에 상설전시관 1을 《한국인의 하루》로, 2020년에 상설전시관 2를 《한국인의 일 년》으로, 그리고 2021년에 상설전시관 3을 《한국인의 일생》으로 새롭게 개편한 것입니다. 이것은‘하루’–‘일 년’-‘일생’으로 이어지는 우리 삶 전반을 연속성 있게 다루기 위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전시 개요
개편한 《한국인의 일생》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는 주요 과정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수연례–치유–상례–제례 등 9개의 부별 주제와 [테마 공간]인 놀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전 상설전시관 3의 주제도 《한국인의 일생》이었으며,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매우 잘 짜진 구성이었습니다. 다만, 조선 시대 사대부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시대와 계층에 대한 한계가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편에서는 시대와 계층을 확장하면서 소주제 구성 내용을 좀 더 빼기 더하기를 했습니다. 시대를 현대까지, 계층을 일반인으로 확장함으로써, 시대별 일생 속에 담고 있는 가치체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계속되는 주제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의례 중심인 한국인의 일생이라는 주제의 통일성에 시대와 상황에 맞는 유연성이 더해진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편의 역점 내용
상설전시는 그동안의 특별전이나 여러 사업 결과물의 총화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여기에 역점을 두고 개편을 했습니다.
이번 상설전시관 3에서는 각부 도입부마다 패널과 함께 대표 이미지 ‘스팟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 동선 유도도 하고, 관람 후에는 스팟 영상을 통해 대표되는 이미지가 전시 내용에 대한 잔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의도하였습니다. 또한, 전시 주제와 연계하여 그동안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연구 성과물과 민속대백과사전, 아카이브 등 결과물을 활용한 검색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2014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일생의례사전』을 편집하여 출생부터 제례까지 부별 주제 내에 검색 공간을 배치하여, 전시품의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였습니다.
자료 영상은 국립민속박물관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개 수집한 홈비디오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수집 당시 VHS 비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매체의 원본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하여 아카이브 자료로 보관했고, 내용이 대부분 기념일 등 의례를 중심으로 촬영한 홈비디오여서 현대 일반인의 일생의례 자료로서 매우 적합하였습니다.
새롭게 제작한 디지털 레이블에는 일반 설명레이블이 크기의 한계로 담을 수 없는 내용,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내용들을 이미지를 확대하여 전시품을 상세히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세부 자료를 추가하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디지털을 이용한 검색과 동시에 종이책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여, 전시장 내에서 다양한 정보자원을 서비스하는 라키비움(larchiveum) 즉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로서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였습니다.

1부. 출생
부별 내용으로 들어가서는, 제일 처음 출생부터 시작하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이 사회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어느 집안에서나 아들 출생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삼신할머니에게 ‘자손번창(子孫繁昌)’과 건강한 남자아이의 출산(出産)을 기원하였습니다. 출산 후에는 대문에 금줄을 쳐 아이의 출생을 알리고 부정한 출입을 막았으며, 태(胎)를 태항아리나 깨끗한 곳에 묻거나 불에 태워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므로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후에 백일잔치를 열어 비로소 축하하고, 1년 후에는 돌잔치를 열어 돌잡이를 통해 아이의 장래를 점쳤던 내용의 전시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의 출생을 축하하는데, 주로 병원에서 출산하면서 출산과 산후(産後)의 금기와 의례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일을 기념하고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축하하는 관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부. 교육
교육으로 들어가면요. 조선 시대에는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윤리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국가에서는 효자·충신 열녀를 표창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남자는 서당에서 글 읽기와 쓰기 등을 배우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향교(鄕校)나 서원(書院)에서 유교 경전이나 역사책을 공부하였고, 여자는 집안에서 받은 한글 교육으로 문자 생활이 가능해져, 편지를 주고받거나 한글 번역서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지식을 넓혀 갔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주로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합니다. 조선 시대와 달리 남녀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등에서 지식을 배우고 익힙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그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마치면, 적성에 따라 대학교를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각종 시험과 평가를 치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부. 성년식
성년식은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로 시대와 계층, 성별마다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는 중국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笄禮)’라는 성년식을 치렀습니다. 남자는 20세 전후에 집안 어른들 앞에서 상투를 틀고 치포관, 갓 등을 차례로 쓰며, 성인 이름인 자(字)를 받는 관례를 행하였고, 여자는 15세 전후로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였는데, 일반적으로 혼례로 성년식을 대신하였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가의 남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진새례를 통해 마을공동체로부터 힘과 농기구 다루는 기술 등을 평가받은 후 성인으로 대접을 받았음을 들돌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년식은 과거와 비교해 축소되었지만, 만 19세에 이르면 성년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고, 법정 대리인의 동의 없이 법률 행위를 행사할 수 있음을 주민등록증, 투표권, 운전면허증 등이 전시품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4부. 관직과 직업
관직과 직업에서는,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지만, 엄격한 사회제도와는 달리 법적으로는 과거(科擧) 시험을 통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였습니다. 학문을 숭상하는 유교 사회에서는 문관을 무관보다 우대하였고요. 신분과 남녀 성별에 구분을 두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일정한 지위와 직업의 범위가 달랐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승경도’를 통해 조선 시대 관직체계를 알 수 있고요. 기산 풍속화 ‘신은실네짓고’는 과거 급제자가 사흘 동안 시험관, 선배 급제자, 친척 등을 찾아 인사하던 삼일유가 가운데 급제자를 놀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요. 선배들이 급제자를 축하하며 놀리는 과거의 신고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종2품 이상의 관리가 타던 외발 수레인 ‘초헌’과 고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의 공덕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바친 일산인 ‘만인산’ 등은 쉽게 볼 수 없는 소장품이니 눈여겨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사회 변화에 따라 직업 제한과 같은 구분은 점차 없어지게 됩니다. 집주릅(가쾌(家儈), 사쾌(舍儈)), 매분구(賣粉嫗) 등 형식은 변하였어도 조선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직업이 있었던 반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등 직업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내용을, ‘박가분’, ‘패지(매매문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남녀 차별 없이 조건과 능력에 따라 다양하고 전문화된 일을 선택하여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5부. 혼례와 가족
혼례 절차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는데요.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가족 예절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혼례 절차와 재래의 관행이 절충되어, 신랑이 신붓집에서 혼례를 행하게 됩니다. 당일 또는 3일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와 조상께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께 폐백을 올렸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재현된 초례청을 정면으로, 좌·우측에 각각 조선 시대와 현대의 혼례 관련 전시품이 진열되어 있어서 혼례 절차를 비교하여 혼례 장소와 혼례복 등의 비교 및 변화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가족을 형성하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였으며, 가풍을 잇고 집안의 평안을 위해 남녀의 역할과 의무가 다르게 부여되었으나, 오늘날 가족 구성원의 역할은 구별되지 않으며, 가족의 형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는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을 사진, 관련 자료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6부. 수연례
수연례는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잔치로, 보통 회갑(回甲, 還甲) 잔치를 이릅니다. 조선 시대에는 집안 어른이 만 60세 생일이 되면, 회갑·환갑이라 하여 수연례(壽宴禮)를 베풀었습니다. 당시 60세 이상은 장수를 뜻하였기 때문에, 자손들은 이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생일을 기념하면서 수연례를 통해 효심(孝心)을 드러냈음을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등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회갑(回甲)에는 수연례보다 가족 간의 식사, 기념 여행이 보편화 되었으며, 칠순(七旬)이나 팔순(八旬)에 수연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수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의례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7부. 치유
사람은 나이 들면서 점차 병에 자주 걸리게 됩니다. 조선 후기에는 병이 들거나 몸이 허약해지면 약방에서 치료하였습니다. 한약방에서는 주로 중국의 의학서를 참고하였지만,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보급되면서 병의 증상에 따라 침이나 뜸을 하고, 약을 조제하여 병을 치료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의학과 더불어 서양 의료기술인 양의학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과학 기술을 이용한 도구 등 양의학 관련 자료를 한의학 자료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전승되어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관한 내용도 관련 자료와 체험 영상으로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굿이나 부적(符籍)과 같은 주술(呪術) 등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병을 예방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음을 황해도 굿청을 재현한 진열장과 치병 굿 영상을 통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8부. 상례
상례 코너에서는, 상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탈상(脫喪)하는 의례를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효(孝)’라는 유교적인 윤리에 따라 삼년상을 자식의 도리로 여겼습니다. 자식들은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 길을 화려한 상여에 태워 보냈고, 내세(來世)를 위해 생활 용기로 쓰일 명기(明器)를 함께 묻기도 하였습니다. 삼년상 동안 자식은 벼슬살이나 농사일도 그만두고 집에 마련된 상청(喪廳)이나, 산소 곁에 여막(廬幕)을 짓고 돌아가신 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효를 다하였습니다.
상례 절차와 문화는 시대의 흐름과 생활환경에 따라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이나 장의사 등이 일반화되면서 매장(埋葬), 화장(火葬) 등 상례가 간소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돌아가신 이에 대한 애도의 의미는 바뀌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9부. 제례
제례 코너에서는,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때마다 추모하는 의례를 말하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조상이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모시고, 그것을 최고의 ‘효(孝)’로 여겼습니다. 유교적인 제례에 따라 집안에 사당(祠堂)을 짓거나 벽감(壁龕)을 만들어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등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셨습니다. 후손들은 이들 4대 조상의 돌아가신 날, 설·추석 등 명절 제사를 통해 감응(感應)하였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조선 시대와 달리 유교 이념에서 벗어나 여러 종교의 영향으로 효와 조상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서 제례 관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상을 기리며 자손의 안녕과 친족의 화합을 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 및 특징
방대한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앞에서 부별 주제 설명을 하면서 전시품 설명도 사이사이 했으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과거와 현대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에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삼신상에 차려놓았던 쌀과 미역으로 첫 밥국을 해줬다면, 오늘날은 병원 출산이 늘면서 금줄도 삼신상도 사라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혼례에는 과거의 중요한 혼수물품이 ‘색실첩’이라면 1970년대는 ‘재봉틀’이 대신하였고, 여성의 혼례복도 과거의 원삼과 활옷이 현대에는 웨딩드레스로 변화되었습니다. 상례 때 죽은 사람의 친속 관계의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가족 친지가 입어야 하는 상복에 대한 ‘복차(服次)’, 수의 명칭과 재질 등을 기록한 ‘수의척수발기(壽衣尺數件記)’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에 의해 상복과 절차가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아버지의 태교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태교 지침서인 ‘태교신기(胎敎新記)’, 남자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를 위로하는 시아버지의 ‘한글 편지’, 아이에게 천인의 지혜가 전해져 학문적 성취와 건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천명의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한 글자씩 받아서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정성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근현대 전시품인 ‘우리들은 1학년’, ‘국어와 산수 교과서’, ‘종합장’, ‘가방’, ‘건강기록부’ 등은 관람객의 기억 속의 가까운 과거를 소환해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전시 관람 포인트
상설전시관 3에서도 실감 콘텐츠를 활용했는데요. 실감 콘텐츠는 최근 기술 적용보다 전시에 적합한 콘텐츠로 전시의 이해가 목적이며, 박물관 소장품의 충실한 해석이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인다는 취지로 구현하였습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서정적으로 표현한 한국인의 일생을 통해 과거와 현대의 만남과 순환을, 앞으로 전개될 전시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돌잡이, 태블릿과 AR을 활용한 폐백 장면의 구현, 퀴즈로 풀어보는 폐백 상차림, 칠교놀이와 고누놀이 등 다양한 체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민간요법의 내용을 해석하여 텍스트 및 그래픽 콘텐츠화했으며, 특히 탈놀이, 굿청의 콘텐츠는 보존회의 시연을 통해 촬영·제작하여 전시의 이해도와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아울러 서당의 문자도 그리기와 재미있는 공부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체험 공간도 있어 즐거운 전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한평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지며 계속됩니다. 시대에 따라 풍속과 의미는 변화했지만, 오래 살고 복을 바라는 마음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입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이 여러분의 삶의 과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위로하고 위안이 되는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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