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집, 서대문형무소 포스터
국내
붉은 벽돌집, 서대문형무소
· 전시기간2026-08-15~2026-12-31
· 전시장소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
· 관련자료
  • 전시명: 《붉은 벽돌집, 서대문형무소》
  • 전시 장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0옥사
  • 전시 기간: 2026년 8월 15일(토) ~ 12월 31일(목)
  • 전시 내용: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감옥 안과 밖에서 독립을 위해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삶
  • 전시 구성
    · 1부. 감옥 안, 버티다
    1-1. 죄가 되다
    1-2. 그럼에도 살아가다
    1-3. 연대로 맞서다
    · 2부. 감옥 밖, 보태다
    2-1. 함께 견디다
    2-2. 힘을 더하다

전시를 열며

‘붉은 벽돌집’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의 모습에서 나온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감옥을 마주한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도 담겨 있습니다.
이곳에는 독립을 향한 뜻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갇혔습니다.
일제는 이들을 사회와 떼어 놓고,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형무소를 이룬 붉은 벽돌은 그 통제 속에서 행해진 강제 노역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붉은 담장 안팎에서는 삶을 이어가고 서로를 돌보며
독립을 향한 뜻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붉은 벽돌집’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실천을 돌아봅니다.

1부 감옥 안, 버티다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삶은 이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지금 이 전시가 열리는 10옥사는 모든 방이 독방으로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이 작은 방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마주하고, 어떻게 버텨냈을까요.

2부 감옥 밖, 보태다

담장 밖의 삶 또한 치열했습니다. 누군가는 옥바라지로 가족의 곁을 지켰고, 또 다른 이들은 수감된 동지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갇힌 이들이 그러했듯, 밖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을 멈추지 않고 힘을 보탰습니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필로그 붉은 벽돌집을 나오다

감옥 안과 밖의 수많은 실천이 모여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날로 이어졌습니다.
붉은 벽돌집을 나서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까요.

주요 전시자료

붉은 벽돌 붉은 벽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옥사를 지을 때 사용된 붉은 벽돌이다. 벽돌 중앙의 ‘京(경)’ 자는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만든 벽돌임을 나타낸다.
유관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유관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수형기록카드)
국사편찬위원회
1920년대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유관순의 수형기록카드이다.
틀밥 틀밥
법무연수원
일제강점기

수감자들에게 지급할 밥을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던 틀이다. 수감자의 등급에 따라 밥의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나무 받침의 두께가 각기 다르게 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예규유찬 서대문형무소예규유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운영에 필요한 규정을 모은 책이다. 수감자 관리, 시설 운영 등 형무소 안의 여러 일에 대한 세부 규칙을 알려준다.
강제노역전표 강제노역전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937

일제강점기 한무성 애국지사의 노역을 기록한 전표(傳票)이다. 전표에는 1936년 8월 24일부터 31일까지의 날짜 칸과 숫자, 확인 도장이 남아 있어 수감자의 노역을 날짜별로 확인하고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정이형이 딸에게 보낸 옥중 편지 정이형이 딸에게 보낸 옥중 편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1941

1941~1942년경 정이형이 서대문형무소 수감 중 이화여고에 다니는 딸 정문경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여고생인 딸의 학업과 품행, 정조관념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이 담겨있다.
안창호가 아내에게 보낸 옥중 편지 안창호가 아내에게 보낸 옥중 편지
독립기념관
1933

1933년 6월 1일 안창호가 아내 이혜련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아내에게 평생 기쁨과 위안을 주지 못하고 근심과 슬픔을 주게 되어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경성부대관 대경성부대관
서울역사박물관
1936

1936년 서대문형무소 인근 현저동 일대를 담은 지도이다. 당시 형무소 앞에는 수감자와 가족들이 모여 살며 '옥바라지 골목'이 형성됐다. 기록에 따르면 현저동 46번지와 64번지에는 수감자의 가족과 독립운동 관련 인물들이 머물렀다.
활명수병 활명수병
동화약품
1940년대

민강(1883~1931)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 약방인 동화약방을 세웠다. 대표 상품인 활명수 판매 수익 일부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