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전시영상 2020 상설전시2 온라인 전시해설 한국인의 일상 -봄-

2020-06-26 조회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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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2 전시해설 한국인의 일상 -봄-
이 전시관에서는 1년 주기로 반복되는 농경생활과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삶을 살아온 조선시대(1392~1910)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다. 살기 좋은 곳에 터를 잡은 한국의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최소 단위의 생활공간이다. 이 터에서 가꾸어온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차례로 볼 수 있고, 아울러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물자와 물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문화와 교역의 장(場)인 시장에서는 한국인의 일상 전반을 볼 수 있다.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현상에 맞추어 살며 만들어낸, 농경세시를 바탕으로 한 생업·의식주·공예 등의 다양한 일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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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상


안녕하십니까?
국립민속박물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이 형성해 온 다양한 삶의 방식을 느끼고 배우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한국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상설전시관은 제1관 <한국인의 하루>, 제2관 <한국인의 일상>, 그리고 제3관 <한국인의 일생>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제2관 <한국인의 일상>관은 사계절 변화에 맞춰 살아온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6월 이후 개편이 예정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상이 개편 전 마지막으로 2관을 관람하실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장승
2관 앞에 오시면 우선 여러 기의 장승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을 입구마다 돌탑이나 이런 장승을 세웠습니다. 장승은 마을을 지키고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 전시된 장승은 경상남도 하동군 쌍계사 입구에 세워져 있던 나무장승으로, 나무를 거꾸로 세워서 만든 것이 특징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몸통에 가람선신(伽藍善神), 외호선신(外護善神)이라고 적혀있어서 사찰을 지키는 장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솟대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시면 조선 후기 한 마을의 사계절 일상이 펼쳐집니다. 마을 어귀에 장승과 함께 솟대가 세워져 있네요. 장승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 외에도 이렇게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이정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긴 막대기나 돌기둥 위에 얹은 신앙물입니다. 예로부터 새는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고 사람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는데요. 솟대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경직도
벽면의 영상은 경직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경직도는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농민의 일상을 나타낸 그림인데요. 옛날에는 임금이나 관리들이 백성의 고단함을 알고 때마다 농사일을 장려하기 위해서 경직도를 가까이에 두었다고 합니다. 사계절의 생활 모습이 그려진 경직도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일상을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경직도 영상 속 아이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한 해 일상을 따라가 보시겠습니다.

<봄>
봄은 24절기 중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농사비가 내린다는 곡우까지로 농작물의 씨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봄이 되면 나라에서는 농사에 힘쓸 것을 권하고, 마을에서는 일 년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역에 따라 산신당을 짓거나 마을 제당에 국시말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동해안의 어촌에서는 해랑신을 동해의 신으로 여겨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사는 곳은 달라도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나봅니다.

순창지도
아래를 내려다보시면 바닥에 한반도 남부 도시, 순창의 옛 지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덮여있습니다. 예로부터 풍수에서 ‘살기 좋은 터’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말합니다. 이는 산이 마을을 감싸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땔감이나 산나물도 얻고, 앞에 하천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거나 식수로도 이용할 수 있어서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은 이러한 배산임수의 지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농사장려
봄은 농절(農節)이라고 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농사일에 전념하도록 배려했습니다.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농가집성』과『목민요람』같은 권농서를 제작하고,『농가월령가』라는 책을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농가월령가는 농가에서 매달 해야 할 일을 노래 가사로 만든 것입니다. 한글로 적혀있어서 한자를 모르는 농민들도 흥겹게 노래가사를 따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농사기술을 익혔다고 합니다.

두레와 농악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럿이 함께하면 훨씬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죠? 농사는 대규모의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 특히 이앙법이 정착된 18세기 이후부터는 마을마다 두레라는 협동노동조직이 있었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간략한 신입 절차만 받으면 두레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일반 서민들의 성인식으로 행해졌던 ‘들돌들기’입니다. 장골돌을 들어 올린 청년은 어른 품삯을 받게 되고, 반골돌을 들어 올린 청년은 일반 품삯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면에 커다란 용이 그려진 깃발이 보이시죠? 이것은 두렛일을 할 때 세우는 농기입니다. 구름과 비를 만드는 용과 풍요를 상징하는 잉어 등의 문양을 그려 넣어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습니다. 농기를 펄럭이고 그 뒤로 태평소,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를 치며 흥을 돋우는 풍물은 일꾼들의 피로도 덜고 손발을 맞춰 능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거름주기
"똥 한 사발이 밥 한 사발이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땅이 녹기 시작하면 먼저 논밭에 거름을 뿌려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하는데, 이때 뿌리는 거름으로는 주로 분뇨를 사용했습니다. 이곳에는 거름을 모으고 나를 때 쓰던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앞쪽의 전시물은 장군입니다. 집에 모아둔 분뇨를 바가지로 퍼 담은 후 논밭까지 운반할 때 사용했는데요. 분뇨를 옮기다 흘러넘치면 아주 난감했겠죠?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입구를 작게 만들고, 깨지지 말라고 삼끈으로 겉면을 감싸기도 했습니다.

봄갈이
땅에 거름을 주고 난 뒤에는 봄갈이를 해야 합니다. 겨울 동안 쓰지 않은 땅의 흙을 골고루 섞어줘야 땅이 기력을 회복하고 비옥한 상태가 됩니다. 중앙에 전시된 나무에 큰 삽이 달려 있는 것이 바로 쟁기입니다. 이것을 소에 메어 땅을 갈았습니다. 만약 소 대신 사람이 땅을 간다면 무려 9명의 일꾼들이 필요했다고 하니, 당시 소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전시된 유물은 소의 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신입니다. 그 옆에 소삼신은 소의 건강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삼금(三禁)’이라 하여 송금(松禁), 주금(酒禁), 우금(牛禁)이 있었습니다. 송금은 집 지을 때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것이고, 주금은 흉년에 곡식을 아끼려고 내린 금주령입니다. 특히 그 중 우금은 농사일에 소중한 소를 함부로 도살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듯 소는 농가의 가장 중요한 일꾼이자 재산이었습니다.

써레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써레입니다. 커다란 빗처럼 생긴 날로 흙을 곱게 고르는 농기구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써레질이 끝나면 논농사의 중요한 과정을 마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음식을 장만해 먹고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보내는 '써레시침'이라는 풍습을 즐겼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논에서 쓰는 것을 무논써레, 밭에서 쓰는 것을 마른써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밭농사
옆 전시장에는 밭을 다지고 고르는데 필요한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갈퀴처럼 생긴 농기구는 흙을 긁거나 흙덩이를 깰 때 사용하는 쇠스랑입니다. 뒤쪽 중앙에 굵은 밧줄이 묶인 커다란 삽이 보이시죠. 땅을 파고 그 흙을 멀리 던질 때 쓰는 가래입니다. 한 사람이 삽자루를 잡고 땅을 파면 서너 명의 사람들이 양쪽에 달린 줄을 힘껏 잡아당겨 파낸 흙을 멀리 던졌습니다. 이렇게 땅의 기력을 회복시키고 나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됩니다.

갯벌농사
여기부터는 스스로 살아 숨을 쉰다는 검은 들판, 갯벌입니다. 이곳에는 갯벌농사에 사용된 여러 가지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게는 수확한 어패류를 담아 지게처럼 어깨에 메고 나르는 도구입니다. 옆에는 갯지렁이를 잡는데 사용하는 쇠스랑도 있고, 굴을 따는데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조새도 있습니다. 여기 바구니처럼 생긴 조개방은 사람이나 소가 메고 끌면 진흙은 빠져나가고 조개만 남아 쉽게 수확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기란 쉽지 않겠죠? 그래서 수확한 어패류를 운반하거나 채취할 때 이 갯벌썰매를 이용했습니다.

나물채취
봄이 되면 마을 주변의 산과 들은 각종 봄나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봄나물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주는 동시에 식량이 부족한 봄에 큰 도움이 되는 부식이었습니다. 봄이 되면 마을의 여인들은 산과 들로 봄나물을 캐러 가고, 남자들은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습니다. 중앙에 전시된 긴 꼬챙이가 보이시죠? 이것은 복령꼬챙이로 소나무 뿌리에 붙어 있는 복령이라는 버섯을 찾을 때, 이 긴 꼬챙이로 찔러서 버섯이 있고 없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구황
봄은 만물이 시작되는 시기인 동시에 지난해 수확한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미처 익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곡식이 바닥난 춘궁기에 사람들은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국가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서 백성들이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왔는데요. 그 중 하나가 책자를 편찬해 그들에게 구황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전시된『구황촬요』에는 솔잎으로 죽을 만들어 먹는 법과 굶주려 종기가 난 사람을 치료하는 법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후 18세기 대마도에서 들여온 고구마와 19세기 만주에서 들여온 감자가 구황식품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절미통입니다. 이것은 쌀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평소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한 주먹씩 따로 모아두는 그릇입니다. 조금씩 아껴먹고 쉽게 꺼낼 수 없도록 입구를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좀도리는 절미통의 전라도 방언입니다. 이 전시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당시의 상황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은 1년을 주기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요. 지금까지 농사의 시작점인 봄과 관련된 각종 농기구와 농경 관련 세시풍속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다음은 여름의 일상이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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