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상
가을
<가을>
뜨거운 햇볕 아래 만물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이 되었습니다. 가을은 절기상 입추(8월 8일 경)부터 상강(10월 23일 경)에 해당하는 계절로,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봄·여름 동안 정성껏 농사지은 작물을 수확하고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합니다.
바로 앞에 큰 보름달이 보이시죠? 가을은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이 있는 계절이기도 한데요,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추석날 우리 조상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마도 겨울 동안 식량 걱정 없이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이제 이 대문을 넘어서면 가을과 겨울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대문과 양옆 기둥에 입춘첩이 붙어 있네요. 대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 기둥에는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 ‘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가 쓰여 있습니다. 한 해 동안 복이 가득하고 재물이 사방에서 모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감사
대문을 넘어 오른편에 떡과 다식을 만드는 도구들이 보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수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확한 곡식과 과일, 떡 등을 올리고 차례를 지냈습니다.
전시장 중앙에 전시된 도구들은 ‘떡살’입니다. 떡살은 떡에 무늬를 찍는 도구로 풍요와 부귀를 상징하는 동·식물이나 문자가 주로 새겨집니다. 전시된 유물에는 꽃, 壽(목숨 수), 福(복 복) 등의 문양이 조각된 떡살들이 보이네요.
떡과 더불어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인 다식은 곡물을 볶은 가루를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한 뒤 모양을 낸 전통 과자입니다. 다식에 무늬를 찍어내는 다식판 역시 떡살과 마찬가지로 꽃문양이나 壽, 福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을걷이
가을이 되어 논밭에서 거두어들인 작물들은 타작과 도정을 거쳐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가을걷이에 사용되는 농기구들을 한번 알아볼까요?
타작은 수확한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과정을 말합니다. 주로 마당에 멍석이나 도래방석을 깔거나 마당 ‘맥질’이라 하여 황토로 마당을 평평하고 매끈하게 하여 돌 등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한 다음, 곡식을 세게 내려치거나 도리깨로 쳐서 낟알을 떨어내지요. 분리된 낟알은 고무래와 갈퀴를 사용해서 한 곳에 모아둡니다. 6번에 전시된 것은 ‘그네’, 지역에 따라서는 ‘홀태’, 또는 ‘첨치’라 부르는 농기구인데요, 위쪽에 나 있는 날 사이사이에 작물을 끼우고 몸쪽으로 당기면 작물의 낟알만 아래로 떨어집니다.
타작을 거친 낟알은 껍질을 벗기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도정이라고 합니다. 앞에 놓인 농기구를 보시죠. 이 농기구를 ‘풍구’라고 합니다. 입구를 통해 낟알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안에서 바람이 일어나면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먼지와 불순물들은 입구를 통해 날아가고 낟알들만 아래쪽 구멍으로 나오게 됩니다.
풍구 뒤쪽에 전시된 커다란 맷돌처럼 생긴 농기구는 ‘매통’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같은 통나무 두 쪽을 맞물려놓은 매통은 위쪽에 난 구멍으로 낟알을 넣고 손잡이를 좌우로 돌리면 울퉁불퉁한 홈에 낟알의 껍질이 벗겨지는 구조입니다.
타작과 도정 단계를 모두 거친 곡식은 소나 말, 또는 사람에 의해 저장고인 뒤주로 운반됩니다. 사람이 나를 때는 지게를 사용하고 소나 말이 옮길 경우는 앞에 놓인 ‘길마’와 ‘옹구’를 사용합니다. ‘ㅅ(시옷)’자 모양의 나무가 길마이고, 그 위에 얹어진 것이 옹구입니다. 옹구에 곡식을 넣고 아랫단에 막대기를 끼워 막아 놓았다가 곳간에 도착해 막대를 뽑으면 곡식을 뒤주에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길마와 옹구를 이용해서 많은 양의 곡식을 한 번에 운반했지요.
집수리
가을걷이로 바쁜 농사일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집수리를 시작합니다.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과 문에 창호지를 새로 붙이고, 구멍 난 벽을 메워서 쥐가 들어와 식량을 갉아먹지 못하게 합니다. 초가집은 가을걷이를 끝낸 볏짚으로 새로 이엉을 엮고, 기와지붕도 깨진 기왓장을 교체해줍니다.
이곳은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 사용하는 공구들이 전시된 부분입니다. 왼쪽에 다양한 종류의 톱이 보이네요. 이 톱을 ‘붕어톱’이라고 하는데, 볼록한 톱날이 붕어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시장 아래에 긴 나무기둥이 놓여있지요? 지붕을 떠받치는 중요한 목재인 ‘상량’입니다. 상량을 놓음으로써 집의 골격이 완성되기 때문에 상량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상량을 올릴 때는 상량 고사를 치르면서 어려운 일을 잘 마친 것을 축하하고 집 공사가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하기도 합니다.
사랑방과 누마루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멋진 건물이 하나 보이네요. 이 건물은 ‘사랑채’입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리학 질서가 강화되면서 가정에서도 남성 공간과 여성 공간을 분리하기 시작했는데 사랑채는 그 중 남성의 공간입니다. 남성들은 사랑채에 머물면서 글공부도 하고 휴식도 취했습니다. 부유한 가문에서는 사랑채를 이와 같이 독립된 건물로 지었지만 일반 농가에서는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사랑방으로 사용했습니다. 사랑방 안을 들여다볼까요? 누워서 쉴 수 있는 보료가 있고, 그 앞에는 ‘서안’이라고 하는 낮은 책상이 있네요. 벽에는 사대부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군자 병풍이 있습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면 사랑방과 연결된 마루가 나오는데 이곳은 ‘누마루’라는 공간입니다. 마루 주변을 난간이 둘러싸고 있어 그렇게 부르는데요, 누마루는 남성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자녀를 교육할 때 주로 사용했던 공간입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농민들로부터 소작료를 거두어들이는 곳이기도 하지요. 안을 볼까요? 손님을 대접할 때 쓰는 찻잔도 있고, 가운데 있는 책상 위에는 소작료를 기록하는 문서도 보이네요.
Permanent Exhibition 2 The Korean Way of Life
Fall
After summer passed, fall came. Fall was the season that ranged from Ipchu, the beginning of the fall, to Sanggang, the day of the first frost, in the lunar calendar. In fall, people harvested crops and prepared for the upcoming winter.
Do you see the big full moon ahead of us? The largest full moon of the year rises on Chuseok, the biggest holiday in the fall. Koreans made wishes while looking up at the full moon on Chuseok. Presumably, they prayed for a healthy life and enough food in winter.
Passing through this traditional door, we can see the way Koreans lived in the fall and winter. Ipchuncheop, hand-calligraphed banners greeting spring, were put up on house doors and the pillars on both sides. On the main door, there are two banners: ‘ipchundaegil’ and ‘geonyangdagyeong’, while on the pillars, there are ‘munyeong-chunhachudongbok’ and ‘honap-dongseonambukjae’. The banners ask for fortune and wealth during the year.
Gratitude
We can see a number of cooking tools on our right side. Koreans have had a long history of holding rituals with fresh fruits, crops, and rice cake (tteok) to express gratitude after a good harvest.
The tools in the center of the showcase are tteoksal. This is a rice cake mold that stamped auspicious patterns such as animals, plants, and characters on tteok. Flowers, and the Chinese characters 壽 (Su, longevity), and 福 (Bok, fortune) are seen on displayed artifacts.
There is another dessert, dasik, which is set on the ritual table along with the tteok. Dasik is a traditional grain cookie made by kneading grain powder with honey or syrup. Dasikpan was a tool that stamped patterns on the surface of dasik, performing a similar function as tteoksal.
Harvest
Fall was harvesting season. The harvested crops had to go through several steps to be edible such as threshing and winnowing. Shall we look around the harvesting tools?
Threshing was the process of separating seeds by beating grain. To get threshing done, farmers first put a mat or a rug in the yard, or rubbed red clay on the ground to make it flat and even and keep impurities out. And then they hit the grains against the ground or beat them using flail. The threshed seeds were gathered with a rake. The sixth tool was called a guenei, and in some regions, it was called a holtae or cheomchi. It was used by placing the crops between the teeth on the upper side and pulling them. Then the seeds separated from the straw fell to the ground.
After threshing, the seeds went through a winnowing process. Winnowing was the term that included removing the peels off of seeds and removing debris. The farming tool at the front is a winnowing box, called a poonggu. Farmers put seeds into the box through its mouth and turned the handle to make wind inside which blew all the impurities out and left only the clean seeds.
The tool behind the poonggu, which looks like a large mill stone, is a maetong. It consists of two interlocked logs of the same size. When turning its handle, the seeds inside were peeled by the bumpy grooves in the middle.
After the threshing and winnowing processes were completed, the edible grain was carried into storage by oxen, horses, or farmers. Farmers used an A-frame carrier while gilma and onggu were used to assist oxen and horses to carry crops. This ‘ㅅ’ frame log is a gilma, and the onggu is the thing hanging on the gilma. To carry a large amount of grain, farmers put it into the straw bags of onggu and plugged a stick into the bottoms. When they arrived at the barn, they pulled out the stick and poured the grain into a grain-chest. It was much easier to carry grain using a gilma and onggu.
Home Repair
At the end of the farming season, people started to repair their houses in preparation for winter. They put up extra paper on windows and doors to block the cold wind and filled the holes in the walls, so rats couldn’t come in to gnaw the wooden walls. Straw-roofed houses were repaired with new straw from the recent harvest, and damaged tiles on the rooves were replaced.
Next, this section displays housing tools. Here, we can see a number of saws of different shapes and sizes. This saw was called a carp-saw because its curved blade resembled a carp fish.
There is a long wooden pillar on the floor. It was a ridge pole, one of the most important timbers supporting a house. Installing a ridge pole had a special meaning because it completed the framework of the house. Therefore, when installing ridge poles, people held a ritual to celebrate finishing the difficult process and to wish for the remaining construction to be safely done.
Men’s Quarters and Railed Terraces
An impressive building stands before us. This building is called a sarangchae. A sarangchae was a men’s quarter in a traditional house buil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the Neo-Confucian order was reinforced leading to the separation of men’s and women’s living spaces. Men used to study and get some rest in this quarter. Rich families could afford to have separate buildings as men’s quarters, but commoners who couldn’t instead used the nearest room from the door as the men’s room. Shall we look inside? There is bedding on the floor and a desk called a seoan at the front. A folding screen with a painting that symbolizes Confucian spirit is standing against the wall.
Walking a few more steps, we can see a terrace. It was called a numaru, meaning ‘a terrace surrounded by a rail.’ It was the place where the host greeted guests or taught his children. Also, tenants came here to pay their farm rent. What can we see inside? There are tea pots for greeting guests, and there is a ledger in which the farm rent was recorded.
Translator : Hyeongmin KO
Copy-editor : Jocelyn Wright, Changhyun OH
常设展馆2 韩国人的日常
秋
度过烈日当空、万物旺盛生长的夏天,一晃就到了秋天。秋天是二十四节气中立秋(8月8日左右)至霜降(10月23日左右)期间,进入秋天人们就可收获春夏精心栽培的农作物, 为即将到来的冬天做储备。
前面有一个又圆又大的月亮,是吧? 秋天是韩民族最隆重的节日, 一年当中中秋节那天的月亮最大最圆, 我们的祖先们望着中秋满月许下心愿。他们该不会是希望一冬不愁吃穿, 祝愿阖家安康幸福吧?
走进这扇大门,秋冬的日常景象就展现在眼前。大门和两侧柱子上贴着立春贴和对联。大门上写着“立春大吉,建阳多庆”, 柱子上写着“门迎春夏秋冬福, 户纳东西南北财”,寓意福满一年, 四海聚财。
感恩
迈过大门, 右侧可以看到制作年糕和茶食的工具。 自古以来, 我们民族就怀着对收获的感恩之心, 把收获的粮食、水果和年糕等献给神灵,举行祭祀。
展场中央摆放的“年糕模子”,是在年糕上压出纹样的器具,主要刻有象征富饶和富贵的动植物或文字。这里展出的文物有刻着花、寿和福等图案的年糕模子。
和年糕一起摆上祭桌的还有茶食,是一种将炒制过的谷物粉,用蜂蜜或糖稀混合后,压成特定形状的传统饼干。茶食模子和年糕模子一样,用来在茶饼上印出花,或寿、福等纹样。
秋收
入秋后,农田里收获的作物经过打场和舂捣,方可食用。让我们来了解一下秋收时使用的农具吧。
打场是把收割的谷物从谷穗上脱离下来的过程。通常是在院子里铺上草席或圆形席垫,或者把院子充当“打麦场”,用黄土把院子填得平整顺溜, 避免混入石子等异物, 然后把谷物铺在场院上猛砸,或用连枷敲打使之脱粒。脱离下来的谷粒用木耙和平耙扫拢到一处。第6项展示的是“铁梳钉耙”,不同地区又把这种农具称为“脱粒耙”,或“尖齿耙”。用上面的耙齿耙梳作物, 向自己的方向一拉, 作物的谷粒就会掉下来。
打场后,谷粒脱壳和去除杂质的过程叫做舂米。看到前面那个农具了吧。它叫风具,就是风扇车。从入口放入谷粒,转动手柄, 里面鼓起风来, 相对轻微的灰尘和杂质会从风道飞出, 只有谷粒会从下面的孔中落出。
风扇车后面展示的大石磨模样的农具叫做“土砻”。土砻将两墩大小相同的原木上下咬合在一起,从上面的孔里放入谷粒, 左右转动把手, 谷粒的壳就会从凹凸不平的槽里脱落出来。
谷物经过打场和舂捣阶段后, 由牛、马或人运到储藏库粮柜里。人力背运时用背架,牛或马驮运时,使用前面展示的“驮鞍”和“驼筐”。入字形的木架子是驮鞍,放在上面的就是驼筐。将谷粮放入驼筐, 在下面插上棍子堵住筐底, 到达仓库后拔出棍子,谷粮就自动泻入粮柜。这样利用驮鞍和驼筐,可以一次运送大量的粮食。
房屋修缮
在秋收繁忙的农活即将结束的时候, 人们开始修缮房子,以应对冬天的到来。为了防止冷风吹进屋子, 需要给窗户和门重新贴上窗户纸, 还要把漏洞的墙体堵上,以防老鼠进来啃粮食。草屋用秋收的稻草重新编织草苫子,瓦屋顶也更换破碎的瓦片。
这里展示的是建房或修缮时使用的工具。左侧可以看到各式各样的锯子。这把锯叫“鲫鱼锯”,鼓起的锯片非常像鱼的形状,因此得名。
有没有看到展场下面摆放着的长梁柱?它是支撑屋顶的重要木件“上梁”。安装上梁后,房屋的骨架才算搭建好了,因此上梁具有特别的意义。上大梁时,还要举行上梁仪式,祈祷顺利克服难关, 祈愿建房顺利完工。
舍廊房和楼廊台
侧过头去看看那栋漂亮的建筑,这便是“舍廊房”,相当于中国的厢房。到了朝鲜后期,随着性理学伦理秩序的强化,家庭也开始把男性和女性的生活空间分隔开来,其中舍廊房就是男性的空间。男人们在那里活动,既学习也休息。在富裕的家庭中, 舍廊房是类似这样的独栋建筑, 但在普通农家, 舍廊房则是离大门最近的那间屋子。我们到舍廊房里面去看看吧? 这里放着可躺下休息的坐垫, 前面还摆着一张矮矮的“书案”。靠墙有象征士大夫精神的四君子屏风。
再走几步, 就会出现与舍廊房相连的地板, 这个空间叫做“楼廊台”。因为周边围有栏杆, 所以被称为楼廊台, 是男性招待客人或教育子女时主要使用的场所, 也是秋收后农民交佃租的地方。要不要看看里面? 除了有待客用的茶杯, 中间的桌子上还有记录佃租的账簿。
中文翻译 : 韩贞姬
中文编辑 : 庞建春
常設展示室2 韓国人の日常
秋
熱い日差しの下、万物が活発に動く夏が過ぎ、秋を迎えました。秋は、二十四節気のうち、立秋から霜降までの期間であり、春から夏にかけて大事に育てた作物を収穫し、もうすぐやって来る冬に備えました。
正面に大きな満月が見えますね。秋は、韓国最大の名節(祝日)である「チュソク(秋夕、旧暦8月15日)」がある季節です。一年中最も大きな満月が出るチュソクの日、先祖たちは満月を眺めながら願い事をしました。おそらく、冬の間食糧が足りなくならないように、また、家族が元気に過ごせるようにと祈ったことでしょう。
この表門を入ると、秋と冬の日常が広がります。扉と両脇の柱に「立春帖」が張り付いています。扉には「立春大吉・建陽多慶」、柱には「門迎春夏秋冬福・戸納東西南北財」と書かれています。一年間幸福に満ち、富が四方から集まるという意味です。
感謝
門をくぐると、右側にトック(お餅)とタシク(茶食)を作る道具が見えます。昔から韓国人は収穫に対する感謝の心を込めて、収穫した穀物と果物、トックなどを供えてチャレ(茶礼)を執り行いました。
中央にある道具は「トックサル」です。トックサルは、トックに模様を押し付ける道具で、富貴を象徴する動植物や文字を刻み込みます。ここには、花の模様や、寿・福などの文字が彫ってあるトックサルがあります。
トックと共にお供え物として用意するタシクは、穀物の粉に、はちみつや水あめなどを混ぜ、型抜きして作る伝統的なお菓子です。型の「タシクパン(茶食板)」には、トックサルのように、花の模様や寿・福などの文字が彫ってあります。
秋の収穫
秋になり、田畑から収穫した作物は、脱穀と搗精の過程を経て、はじめて食べられる状態になります。秋の収穫に使われる農機具を見てみましょう。
脱穀は収穫した穀物の穂から穀粒を取る作業を言います。庭に筵を敷いたり、捏ねた土で庭の地面を均し異物が入らないように整えた後、穀物を叩きつけたり、広げた穀物をトリケ(唐竿)で強く打って脱穀をしました。落とした穀粒は、柄振りや熊手を使って集めます。6番の展示品は、「クネ(千歯扱き)」という農機具で、地域によって「ホルテ」「チョムチ」など様々な呼び方があります。櫛状の歯の部分に稲や麦の束を挟み込んで引っ張ると脱穀できます。
脱穀の後、籾殻を外し、不純物を取り除く作業をします。手前の農機具をご覧ください。これは「プング(唐箕)」といいます。上部の口を通して穀物を入れてハンドルを回すと、中で風が起きて、殻や藁くずなどの軽いものは吹き飛ばされ、穀粒だけが落ちます。
プングの後ろにある、大きな挽き臼のような農具は「メトン」といいます。ほぼ同じ大きさの円筒形の木を上下に重ねた磨り臼です。上臼の穴から穀粒を入れて取手を左右に回すと、凸凹した溝により籾殻が除かれます。
脱穀して食べられるよう加工された穀物は、牛・馬や人力で運び、米びつに収めます。人が運ぶ時はチゲ(背負子)を使い、牛や馬に運ばせる場合は「キルマ(荷鞍)」と「オング(荷袋)」を使います。「人」字形の道具がキルマで、キルマの上に載っているのがオングです。オングに穀物を入れて倉庫に運び、オングの裾のところに差し込んでおいた棒を抜くと、穀物が落ち、米びつに入れることができました。こうしてキルマとオングを用いて大量の穀物をいっぺんに運びました。
家の修理
秋の取り入れを最後に忙しい農作業が終わる頃、村人は冬に備えて家の修理をはじめます。寒風を防ぐために、窓や戸の障子紙を貼り替え、ねずみの被害を減らすために、壁に開いた穴を埋めました。草葺屋根は、新しい藁や茅で葺き替え、瓦葺屋根も割れた瓦を入れ替える作業をしました。
ここには、家を建てたり修理したりする時に使われる工具が展示されています。左側には様々な種類ののこぎりが見えますね。こののこぎりは、刃の部分が鮒のようにふくらんでいることから、「プンオ・トプ(鮒形のこぎり)」といいます。
下の方には長い木材が置いてあります。屋根を支える重要な部材の棟木です。棟木を取り付けることで、建物の骨組みが完成するので、棟木は特別な意味を持っています。棟木を上げる「上棟(棟上げ)」の時には「上棟式」を行って難しい作業が無事終わったことを祝い、建築工事が最後までうまく進むよう祈ります。
サランバン(舎廊房)とヌ(楼)マル
隣に素敵な建物が見えますね。この建物は「サラン(舎廊)チェ」といいます。朝鮮後期に、性理学(儒教)による社会的秩序が強化され、家庭でも男性の空間と女性の空間が分離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このサランチェは男性の空間です。男性はサランチェで過ごし、勉強をしたり、休んだりしました。裕福な家では、サランチェを独立した建物として設けましたが、一般農家では、表門から最も近い方の部屋を「サランバン(舎廊房)」として使いました。サランバンの中を覗いてみましょう。横になって休める敷布団のポリョがあり、その前にはソアン(書案)という小型の机があります。後ろには、士大夫の精神を象徴する四君子が描かれた屏風を飾りました。
サランバンと繋がっている所を「マル(板の間)」といいますが、特にこちらは「ヌ(楼)マル」という空間です。マルの周囲を欄干で囲んでおり、そう呼ばれています。ヌマルは、男性がお客さんをもてなしたり、子どもを教育したりする時に使った空間です。また、秋の収穫を終えた農民から小作料を取り立てる所でもありました。中を見てみましょう。おもてなしに使う茶器があり、真ん中にある机の上には、小作料について記録した文書もあります。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ヘ)
翻訳監修 中村克哉(なかむら かつ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