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전시영상 2020 상설전시1 온라인 전시해설 한국인의 하루 -아침-

2020-06-29 조회수 : 1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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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관1 전시해설 한국인의 하루 -아침-
《한국인의 하루》 전시관에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조선 후기 이후 한국인의 하루 일상을 보여준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마을 안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라는 시간 속에 각자의 생업에 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그렸다. 새벽 세수로 잠을 깨며 몸가짐을 고르던 선비, 농사를 짓는 농부와 공방에서 생활용품을 만드는 장인,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냇물에 빨래하는 여인,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저녁상을 준비하는 아낙의 모습에서 하루를 열고 마무리하는, 낯설지 않은 우리네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관은 계절을 맞이하고, 함께 나며, 보내는 한국인의 순환적 일상을 반영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변한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통 사회의 일상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근현대의 하루를 소개하는데, 시간을 넘어 변하지 않는 ‘하루’가 지닌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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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1 한국인의 하루 (봄)
아침

안녕하십니까?
국립민속박물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옛 궁궐인 경복궁 내에 위치하고 있는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한국의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상설전시관은 제1관 <한국인의 하루>, 제2관 <한국인의 일상>, 그리고 제3관 <한국인의 일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1관 <한국인의 하루>관은 조선 후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하루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절마다 유물을 교체해 상설전을 기획전처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앙부일구
현재 전시장 입구의 짙은 어둠은 동이 트기 전 새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시간을 보는데요. 시간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해시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계의 이름은 가마솥을 닮았다 하여 앙부일구라고 부릅니다. 태양의 그림자를 측정해서 시간을 알려주는 반구형의 시계로, 1434년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장영실, 이천, 김조 등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행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 설치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15세기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을 이용해서 시간을 표시했다고 하니,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여기 전시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을 복제한 것으로, 글을 이용해서 시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앙부일구 보는 법
다음으로는 앙부일구 보는 법을 간단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목한 시계판 중간에는 정북방향을 가리키는 영침이 있고, 시계판 표면에는 7개의 세로선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세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자세히 보시면 세로선 사이에는 또 7개의 짧은 선이 있는데, 각각의 선은 15분을 의미합니다. 또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13개의 가로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동지에서 하지까지의 절기를 나타냅니다. 여름에는 영침의 그림자가 짧고, 겨울에는 길어집니다. 우리조상들은 이런 해시계를 통해서 시간뿐만 아니라 절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여기부터는 만물이 깨어나는 아침입니다. 닭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면,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이 33번 울리고 마침내 하루가 시작됩니다.

일용지결
여기 책자가 하나 놓여있는데요. 『일용지결』이라고 쓰여진 이 책은 생활지침서로, 지금 우리가 하루 일과표를 짜듯이 조선시대 '윤최식'이라는 선비가 하루를 '십이간지'에 따라 열두 시각으로 나누어 선비들이 해야 할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디지털 책자로 손수 책장을 넘겨보실 수도 있는데요. 첨단디지털과 전통의 조화를 시도한 학예연구사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럼 사랑채로 이동하셔서 선비들의 아침 모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선비의 의관정제
이 공간에는 조선시대 양반사대부 집안의 사랑채를 재현하였습니다. 사랑채는 사랑방, 사랑대청, 누마루로 구성되며, 대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외부세계와의 연결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성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남성전용공간입니다. 선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안을 하고 의복을 갖춘 후,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사당에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선비들이 의관을 정제할 때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할 때 사용하던 음양소와 앙증맞은 수염 빗까지 다양한 미용도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비들은 하루를 맞이하면서 몸과 의복을 단정히 하는 것을 반드시 지켜야할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하피첩
이 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보물 제1683-2호인 ‘하피첩’입니다. 이 하피첩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0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부인이 보낸 노을빛 치마를 잘라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어 보낸 서첩입니다. 여기서 ‘하피’란 노을 빛깔의 붉은 색 치마란 뜻으로,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의 예복을 의미합니다. 하피첩은 총 네 첩인데 안타깝게도 세 첩만 전해지고, 6.25때 분실되었다가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손님맞이
이곳은 사랑방 옆에 있는 누마루입니다. 선비들은 사랑채에서 주로 손님을 맞이하고 친척이나 이웃들과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라 하여 조상을 모시는 일과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선비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미덕이자 의무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고 시를 지어 교류하며 친분을 다졌습니다. 이곳에는 손님이 방문했을 때 대접하던 다과상과 손님과 함께 두었던 바둑판이 놓여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때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도 같이 대접했는데요. 문중의 종가에서는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들을 예로 맞이하는 것은 종손의 몫이고, 정성스레 음식을 차리는 것은 종부의 몫이었습니다. 이렇듯 접빈객(接賓客)은 집안 전체의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관리의 시찰
그럼 이어서 관리들의 아침 풍경을 살펴보겠습니다. 관복을 입은 관리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일터로 향합니다. 관리의 주된 일과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지역을 살피고 백성들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송사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민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던 관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 전시된 구군복은 조선 후기에 지방관이 예를 갖춰 공식 업무를 할 때 입었습니다. 그 옆의 유물들은 지방관이 소송이나 재판을 처리하는데 사용했던 문서들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감에게 논의 소유권을 확인해 달라는 청원서도 보이고, 수령이 판결을 내릴 때 참고 서적으로 사용했던 책들도 보입니다.

공동체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 가며 함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선비들은 지혜를 나누며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재물이 넉넉한 사람들은 재산이나 물건을 나누어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혼례나 장례와 같은 집안 대소사에 쓸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뒤에 전시된 나무로 만든 상자 안에 담겨진 그릇들은 ‘김이조합기’라고 하여, 김씨, 이씨, 조씨 집안에서 마을 행사가 있을 때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입니다. 가까이 보시면 앞뒤에 수복 글자를 새겨서 장수와 복을 부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비와 관리의 바쁜 아침 풍경을 살펴보았다면, 다음은 일반 백성들의 분주한 아침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물
우물은 땅을 파서 지하수를 모아놓은 시설로, 주위의 흙이 붕괴되는 것을 막고, 또 사람이나 동물이 빠지지 않도록 우물 입구 주위에 돌을 정(井)자 형태로 높게 쌓아 올려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유물 형태를 방틀 또는 정(井)자처럼 생겼다 하여 정자틀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우물이 있는 집도 있었지만 대개는 마을 공동 우물에서 아침마다 물을 길어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물을 떠와야 하루 운이 좋다고 믿어서, 아침 일찍 물을 길어 사발에 담아 부엌에 두고 조왕신께 치성(致誠)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동이와 똬리
이 유물은 우물을 길어 옮기던 물동이로, 물을 가득 담고 바가지를 위에 엎어놓아 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옆에 있는 것은 물동이를 일 때 사용하던 똬리인데요. 똬리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이 둥근 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나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똬리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첩
우리나라는 입춘이 되면 벽사(辟邪)를 위해 좋은 뜻의 글귀를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입춘첩 또는 입춘서라고 부릅니다. 입춘첩은 입춘 당일에 절입시각(節入時刻)을 맞추어 붙여야 그 효험이 있다고 여겨서, 각 가정에서는 미리 입춘첩을 준비해 두었다가 입춘 당일에 붙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 붙인 입춘첩은 떼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이듬해 입춘이 되면 그 위에 덧붙이는 것이 관례라고 하네요. 여기 입춘첩에 쓰여 있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운이 들어오고, 집안에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올 한해도 여러분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낯설지 않은 우리네 아침 풍경을 살펴봤습니다. 이어서 낮 시간대 바쁜 일상으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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