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전시영상 2020 상설전시3 온라인 전시해설 한국인의 일생-관례,가족-

2020-09-24 조회수 : 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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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3 전시해설 한국인의 일생-관례,가족-
이 전시관에서는 조선시대(1392~1910) 양반 사대부 집안의 개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한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이념에 따라 아들 중심의 가계(家系) 계승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출산 전부터 남자아이를 기원하였다. 출산 후에는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무사히 성장한 것을 축하하였다.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여자는 15세에 계례(笄禮)를 치러 어른으로 인정받고, 혼례(婚禮)를 치러 가족을 구성하였다. 남자는 과거를 봐서 관직에 나가고, 여자는 안주인으로 집안 살림을 관장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여겼다. 죽음에 따른 가족의 슬픔은 삼년상(三年喪)이라는 상례(喪禮)를 치르면서 극복하고, 돌아가신 조상은 사당에 모시고 제사(祭祀)를 지냄으로써 자손의 번창과 친족의 화합을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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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3 한국인의 일생
관례, 혼례, 가족

앞서 조선 후기 양반들의 출생부터 교육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조선시대의 성인식인 관례부터 풍산 김씨 허백당 문중의 가족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관례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가족 예절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筓禮)’라는 성인식을 하였습니다.‘관례’는 남자가 아이의 세계에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교적 전통사회의 성인식으로 사대부 집안에서 주로 행해졌습니다. 15세에 집안어른들 앞에서 상투를 틀고‘치포관 ․ 유건 ․ 갓’등을 차례로 쓰고 성인으로서의 이름인 자(字)를 부여 받음으로써‘관례’를 치렀습니다. 여자는 15세 전후에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계례’를 행하였는데, 성인식을 대신하여 일반적으로 혼례 전에 행하였습니다.‘관례’와‘계례’가 끝나면 조상이 계신 사당에 가서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고, 집안 어른과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2월 초하루 머슴날과 7월 백중날에 두레가 날 때 ‘들돌들기’를 통해 성인식을 치렀습니다.

납폐

조선시대는 남녀구별이 엄격한 유교사회로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중매는 남자와 여자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적은 사주단자(四柱單子)로 궁합을 맞추고 혼사가 정해지면 신랑집에서는 약혼의 표시로‘혼서지(婚書紙)’와 예물을 담아서‘납폐함(納幣函)’을 보냈는데요. 혼서지와 함께 신부의 치맛감 등 혼수품과 그 내역을 적은 물목단자를 납폐함에 담아서 신부집에 보냈습니다.‘납폐함’은 혼인을 상징하는 예물이기 때문에 자손번창, 가내평안을 뜻하는 글자 및 수복(壽福)문자 등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나무기러기는 신랑이 신부의 부모 또는 친척 앞에서 신부와 한평생을 사이좋게 함께 할 것을 서약하는‘전안례(奠雁禮)’때 올립니다. 사선은 혼례 때 신랑이 말을 타거나 걷는 동안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하고, 신부는 모란이 자수된 혼선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친영

친영(親迎)은 신랑이 신부를 친히 맞이한다는 뜻으로, 신부를 신랑 집으로 맞이하여 혼례식을 치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신방을 차리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에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친영 풍속은 실제로 잘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주자가례』의 혼례 절차와 전통관행이 절충되어, 신랑이 신부집에서 초례를 행하되, 당일이나 3일 후에 신랑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폐백을 올리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초례청

혼인은 가족을 이루는 최초의 과정으로 일생의례 중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 혼례를 ‘인륜지대사’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신랑 신부의 혼례가 진행되고 있는 신부집 마당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처음 만나서 절을 하고 서로 합환주를 마시는 예식을 초례(醮禮)라고 하며 예식을 치르는 곳을 초례청이라고 합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면 초례청은 신랑 집에 차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행에 따라 신부 집의 대청이나 마당에 차렸습니다. 혼례는 신랑이 신부 집에 나무기러기를 드리는‘전안례(奠雁禮)’, 신랑과 신부가 맞절하는‘교배례(交拜禮)’, 술잔을 나누는‘합근례(合巹禮)’순서로 진행 됩니다. 초례상에는 청색․홍색의 초, 솔가지와 대나무․수탉과 암탉․밤․대추 등을 차렸습니다. 초례는 진행자가 초례상 뒤쪽에 서서 식순에 따라 혼례식을 진행하는데, 음양의 원리에 따라 신랑은 동쪽에 서며, 신부는 서쪽에 서서 예식을 진행하였습니다.
혼례복은 신랑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신부는 활옷에 화관(花冠)을 쓰거나 원삼(圓衫)에 족두리를 썼습니다. 사모관대는 조선시대 관리의 일상 집무복으로,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단령(團領)을 입으며 목화(木靴)를 신고 허리에 각대를 차는 것을 말합니다. 신부는 다홍치마에 분홍속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녹색 혹은 노란색 저고리를 입으며 원삼(圓衫)이나 활옷을 입습니다. 신부의 활옷과 화관 등은 신랑 집에서 마련하여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마을에서 공동으로 장만하여 두었다가 사용하였습니다. 얼굴에는 연지 곤지를 찍고 화장을 했습니다. 현대에도 간혹 전통혼례를 하기도 하며, 서양식 혼례를 하더라도 폐백의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시부모와 시댁의 어르신들께 인사를 올립니다.

신부가마

신부는 혼례를 마치고 화려하게 꾸민 신부가마를 타고 신랑 집으로 신행을 떠났습니다. 앞뒤에 각각 2명씩 총 4명이 가마를 들고 이동하기 때문에 사인교(四人轎)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나쁜 기운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가마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었는데, 없을 경우에는 호피무늬 이불로 대신하였습니다. 가마 안 방석 밑에는 액을 막아주는 숯을 깔고,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목화씨를 넣었습니다.

가족

조선시대에는 부모와 자식의 혈연적 관계가 천륜으로 규정되면서 가족 간의 유교적인‘효’윤리가 중요한 사회적 규범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였고, 삼년상과 조상 제사는‘효’의 지극한 표현이었습니다. 이에 집안을 대표하는 가장은 가계 계승을 위해 제사와 재산을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족보에 가계 및 친족 관계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조선 후기 한 가문의 가족 간 생활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매년 한국국학진흥원과 공동으로‘가족’전시장을 개편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일곱 번째로“이치를 깨닫고 나라를 생각하다 <풍산김씨 허백당 김양진 문중의 가족이야기>‘ 입니다.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1467~1535)은 조선시대 11대 왕 중종 때의 인물로, 청백리로 유명하며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습니다.
이후 허백당 문중의 인물들은 경상북도 안동, 봉화, 예천 등지에 거주하며, 몸과 마음을 닦아 기른 인격과 학문을 바탕으로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생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곳에는 허백당 김양진 문중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유물은‘유경당 현판(幽敬堂懸板)’입니다. 이 현판은 김의정(金義貞,1495~1547)이 안동부 풍산현 오미동에 거처하던 집의 당호 편액으로, 몽인(夢人) 정학교(丁學敎, 1832~1914)가 썼습니다. 김의정은 김양진의 아들로, 151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26년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다음은‘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입니다. 허백당 김양진의 12대손 김중휴(金重休, 1797~1863)가 가문을 선양할 목적으로 19명의 조상에 얽힌 31가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 만든 서화첩입니다. 이 그림은‘완영민읍수도(完營民泣隨圖)’인데요, 허백당 김양진이 전라도 관찰사로서 선정을 베푼 이야기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고을사람들이 전송하러 나와 눈물을 흘리면서 따르고 있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김숭조홍패(金崇祖紅牌)’는 진사 김숭조(金崇祖, 1598~1632)가 1629년 문과에 병과 1인에 급제한 증서입니다. 조선시대 16대 왕 인조는 김양진의 증손자인 김대현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소과(小科) 에 합격하고, 5형제가 문과급제를 하자 오미(五美)라는 마을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풍산김씨 허백당 문중은 선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많은 관인들 뿐 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2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문입니다. 풍산김씨 허백당 김양진 문중의 가족이야기를 통해, 가족 간의 소중한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앞으로도 매년 한국 명문가들의 가계 계승 및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조선시대‘관례’부터 가족이야기까지 보셨습니다. 다음으로는 조선시대 과거제도부터 환갑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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