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국립민속박물관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 주제를 새롭게 개편하여 2021년 12월 28일부터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관 3은 조선 시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일생의례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기획의 배경과 목적
그렇다면 상설전시관을 왜 개편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상설전시 간의 연계성을 높이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우리의 삶을 보다 짜임새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2018년에 상설전시관 1을 《한국인의 하루》로, 2020년에 상설전시관 2를 《한국인의 일 년》으로, 그리고 2021년에 상설전시관 3을 《한국인의 일생》으로 새롭게 개편한 것입니다. 이것은‘하루’–‘일 년’-‘일생’으로 이어지는 우리 삶 전반을 연속성 있게 다루기 위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전시 개요
개편한 《한국인의 일생》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는 주요 과정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출생–교육–성년식–관직과 직업–혼례와 가족–수연례–치유–상례–제례 등 9개의 부별 주제와 [테마 공간]인 놀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전 상설전시관 3의 주제도 《한국인의 일생》이었으며,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매우 잘 짜진 구성이었습니다. 다만, 조선 시대 사대부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시대와 계층에 대한 한계가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편에서는 시대와 계층을 확장하면서 소주제 구성 내용을 좀 더 빼기 더하기를 했습니다. 시대를 현대까지, 계층을 일반인으로 확장함으로써, 시대별 일생 속에 담고 있는 가치체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계속되는 주제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의례 중심인 한국인의 일생이라는 주제의 통일성에 시대와 상황에 맞는 유연성이 더해진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편의 역점 내용
상설전시는 그동안의 특별전이나 여러 사업 결과물의 총화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여기에 역점을 두고 개편을 했습니다.
이번 상설전시관 3에서는 각부 도입부마다 패널과 함께 대표 이미지 ‘스팟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 동선 유도도 하고, 관람 후에는 스팟 영상을 통해 대표되는 이미지가 전시 내용에 대한 잔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의도하였습니다. 또한, 전시 주제와 연계하여 그동안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연구 성과물과 민속대백과사전, 아카이브 등 결과물을 활용한 검색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2014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일생의례사전』을 편집하여 출생부터 제례까지 부별 주제 내에 검색 공간을 배치하여, 전시품의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였습니다.
자료 영상은 국립민속박물관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개 수집한 홈비디오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수집 당시 VHS 비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매체의 원본을 디지털화(Digitalization)하여 아카이브 자료로 보관했고, 내용이 대부분 기념일 등 의례를 중심으로 촬영한 홈비디오여서 현대 일반인의 일생의례 자료로서 매우 적합하였습니다.
새롭게 제작한 디지털 레이블에는 일반 설명레이블이 크기의 한계로 담을 수 없는 내용,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내용들을 이미지를 확대하여 전시품을 상세히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세부 자료를 추가하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디지털을 이용한 검색과 동시에 종이책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여, 전시장 내에서 다양한 정보자원을 서비스하는 라키비움(larchiveum) 즉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로서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였습니다.
1부. 출생
부별 내용으로 들어가서는, 제일 처음 출생부터 시작하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이 사회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어느 집안에서나 아들 출생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삼신할머니에게 ‘자손번창(子孫繁昌)’과 건강한 남자아이의 출산(出産)을 기원하였습니다. 출산 후에는 대문에 금줄을 쳐 아이의 출생을 알리고 부정한 출입을 막았으며, 태(胎)를 태항아리나 깨끗한 곳에 묻거나 불에 태워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므로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후에 백일잔치를 열어 비로소 축하하고, 1년 후에는 돌잔치를 열어 돌잡이를 통해 아이의 장래를 점쳤던 내용의 전시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의 출생을 축하하는데, 주로 병원에서 출산하면서 출산과 산후(産後)의 금기와 의례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일을 기념하고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축하하는 관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부. 교육
교육으로 들어가면요. 조선 시대에는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윤리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국가에서는 효자·충신 열녀를 표창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등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남자는 서당에서 글 읽기와 쓰기 등을 배우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향교(鄕校)나 서원(書院)에서 유교 경전이나 역사책을 공부하였고, 여자는 집안에서 받은 한글 교육으로 문자 생활이 가능해져, 편지를 주고받거나 한글 번역서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 지식을 넓혀 갔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주로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합니다. 조선 시대와 달리 남녀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등에서 지식을 배우고 익힙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그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마치면, 적성에 따라 대학교를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각종 시험과 평가를 치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부. 성년식
성년식은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인정받는 의례로 시대와 계층, 성별마다 달랐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는 중국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笄禮)’라는 성년식을 치렀습니다. 남자는 20세 전후에 집안 어른들 앞에서 상투를 틀고 치포관, 갓 등을 차례로 쓰며, 성인 이름인 자(字)를 받는 관례를 행하였고, 여자는 15세 전후로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였는데, 일반적으로 혼례로 성년식을 대신하였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가의 남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진새례를 통해 마을공동체로부터 힘과 농기구 다루는 기술 등을 평가받은 후 성인으로 대접을 받았음을 들돌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년식은 과거와 비교해 축소되었지만, 만 19세에 이르면 성년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고, 법정 대리인의 동의 없이 법률 행위를 행사할 수 있음을 주민등록증, 투표권, 운전면허증 등이 전시품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4부. 관직과 직업
관직과 직업에서는,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지만, 엄격한 사회제도와는 달리 법적으로는 과거(科擧) 시험을 통해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였습니다. 학문을 숭상하는 유교 사회에서는 문관을 무관보다 우대하였고요. 신분과 남녀 성별에 구분을 두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일정한 지위와 직업의 범위가 달랐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승경도’를 통해 조선 시대 관직체계를 알 수 있고요. 기산 풍속화 ‘신은실네짓고’는 과거 급제자가 사흘 동안 시험관, 선배 급제자, 친척 등을 찾아 인사하던 삼일유가 가운데 급제자를 놀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요. 선배들이 급제자를 축하하며 놀리는 과거의 신고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종2품 이상의 관리가 타던 외발 수레인 ‘초헌’과 고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의 공덕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바친 일산인 ‘만인산’ 등은 쉽게 볼 수 없는 소장품이니 눈여겨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사회 변화에 따라 직업 제한과 같은 구분은 점차 없어지게 됩니다. 집주릅(가쾌(家儈), 사쾌(舍儈)), 매분구(賣粉嫗) 등 형식은 변하였어도 조선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직업이 있었던 반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는 등 직업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내용을, ‘박가분’, ‘패지(매매문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남녀 차별 없이 조건과 능력에 따라 다양하고 전문화된 일을 선택하여 개인이 사회에 참여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5부. 혼례와 가족
혼례 절차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는데요. 조선 후기에는 중국의 가족 예절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혼례 절차와 재래의 관행이 절충되어, 신랑이 신붓집에서 혼례를 행하게 됩니다. 당일 또는 3일 후에 자기 집으로 돌아와 조상께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께 폐백을 올렸습니다. 전시장에서는 재현된 초례청을 정면으로, 좌·우측에 각각 조선 시대와 현대의 혼례 관련 전시품이 진열되어 있어서 혼례 절차를 비교하여 혼례 장소와 혼례복 등의 비교 및 변화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가족을 형성하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 계승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였으며, 가풍을 잇고 집안의 평안을 위해 남녀의 역할과 의무가 다르게 부여되었으나, 오늘날 가족 구성원의 역할은 구별되지 않으며, 가족의 형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는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음을 사진, 관련 자료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6부. 수연례
수연례는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잔치로, 보통 회갑(回甲, 還甲) 잔치를 이릅니다. 조선 시대에는 집안 어른이 만 60세 생일이 되면, 회갑·환갑이라 하여 수연례(壽宴禮)를 베풀었습니다. 당시 60세 이상은 장수를 뜻하였기 때문에, 자손들은 이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생일을 기념하면서 수연례를 통해 효심(孝心)을 드러냈음을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등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회갑(回甲)에는 수연례보다 가족 간의 식사, 기념 여행이 보편화 되었으며, 칠순(七旬)이나 팔순(八旬)에 수연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수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의례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7부. 치유
사람은 나이 들면서 점차 병에 자주 걸리게 됩니다. 조선 후기에는 병이 들거나 몸이 허약해지면 약방에서 치료하였습니다. 한약방에서는 주로 중국의 의학서를 참고하였지만,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보급되면서 병의 증상에 따라 침이나 뜸을 하고, 약을 조제하여 병을 치료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한의학과 더불어 서양 의료기술인 양의학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과학 기술을 이용한 도구 등 양의학 관련 자료를 한의학 자료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전승되어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관한 내용도 관련 자료와 체험 영상으로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굿이나 부적(符籍)과 같은 주술(呪術) 등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병을 예방하거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음을 황해도 굿청을 재현한 진열장과 치병 굿 영상을 통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8부. 상례
상례 코너에서는, 상례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탈상(脫喪)하는 의례를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효(孝)’라는 유교적인 윤리에 따라 삼년상을 자식의 도리로 여겼습니다. 자식들은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 길을 화려한 상여에 태워 보냈고, 내세(來世)를 위해 생활 용기로 쓰일 명기(明器)를 함께 묻기도 하였습니다. 삼년상 동안 자식은 벼슬살이나 농사일도 그만두고 집에 마련된 상청(喪廳)이나, 산소 곁에 여막(廬幕)을 짓고 돌아가신 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효를 다하였습니다.
상례 절차와 문화는 시대의 흐름과 생활환경에 따라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이나 장의사 등이 일반화되면서 매장(埋葬), 화장(火葬) 등 상례가 간소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돌아가신 이에 대한 애도의 의미는 바뀌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9부. 제례
제례 코너에서는,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때마다 추모하는 의례를 말하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조상이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모시고, 그것을 최고의 ‘효(孝)’로 여겼습니다. 유교적인 제례에 따라 집안에 사당(祠堂)을 짓거나 벽감(壁龕)을 만들어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등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셨습니다. 후손들은 이들 4대 조상의 돌아가신 날, 설·추석 등 명절 제사를 통해 감응(感應)하였음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조선 시대와 달리 유교 이념에서 벗어나 여러 종교의 영향으로 효와 조상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서 제례 관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상을 기리며 자손의 안녕과 친족의 화합을 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 및 특징
방대한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앞에서 부별 주제 설명을 하면서 전시품 설명도 사이사이 했으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과거와 현대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에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고 삼신상에 차려놓았던 쌀과 미역으로 첫 밥국을 해줬다면, 오늘날은 병원 출산이 늘면서 금줄도 삼신상도 사라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혼례에는 과거의 중요한 혼수물품이 ‘색실첩’이라면 1970년대는 ‘재봉틀’이 대신하였고, 여성의 혼례복도 과거의 원삼과 활옷이 현대에는 웨딩드레스로 변화되었습니다. 상례 때 죽은 사람의 친속 관계의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가족 친지가 입어야 하는 상복에 대한 ‘복차(服次)’, 수의 명칭과 재질 등을 기록한 ‘수의척수발기(壽衣尺數件記)’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에 의해 상복과 절차가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 아버지의 태교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태교 지침서인 ‘태교신기(胎敎新記)’, 남자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를 위로하는 시아버지의 ‘한글 편지’, 아이에게 천인의 지혜가 전해져 학문적 성취와 건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천명의 사람에게 찾아다니며 한 글자씩 받아서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정성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근현대 전시품인 ‘우리들은 1학년’, ‘국어와 산수 교과서’, ‘종합장’, ‘가방’, ‘건강기록부’ 등은 관람객의 기억 속의 가까운 과거를 소환해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전시 관람 포인트
상설전시관 3에서도 실감 콘텐츠를 활용했는데요. 실감 콘텐츠는 최근 기술 적용보다 전시에 적합한 콘텐츠로 전시의 이해가 목적이며, 박물관 소장품의 충실한 해석이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인다는 취지로 구현하였습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서정적으로 표현한 한국인의 일생을 통해 과거와 현대의 만남과 순환을, 앞으로 전개될 전시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돌잡이, 태블릿과 AR을 활용한 폐백 장면의 구현, 퀴즈로 풀어보는 폐백 상차림, 칠교놀이와 고누놀이 등 다양한 체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민간요법의 내용을 해석하여 텍스트 및 그래픽 콘텐츠화했으며, 특히 탈놀이, 굿청의 콘텐츠는 보존회의 시연을 통해 촬영·제작하여 전시의 이해도와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아울러 서당의 문자도 그리기와 재미있는 공부 등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체험 공간도 있어 즐거운 전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한평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지며 계속됩니다. 시대에 따라 풍속과 의미는 변화했지만, 오래 살고 복을 바라는 마음은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입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이 여러분의 삶의 과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위로하고 위안이 되는 전시가 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ermanent Exhibition 3 Korean Life Passages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NFMK) is now open with its third permanent exhibition, Korean Life Passages. The exhibition’s theme highlights the changes over the years to important moments in Koreans’ lives from birth to death. The museum has reopened the exhibition since December 28th, 2021.
The Goal of Remodeling
Some of you may wonder why we remodeled the permanent exhibition. While there were many reasons, the following explanation should clarify our reasoning behind the decision.
The NFMK has been seeking ways to enhance the connection between its permanent exhibitions and better deliver Korean folk culture to visitors. To achieve this goal, extensive remodeling works have been done to the permanent exhibitions since 2018: the first exhibition in 2018, the second exhibition in 2020, and finally the third exhibition, Korean Life Passages, in 2021. This is the medium- and long-term project of the NFMK trying to cover the continuity of our lives represented by a day – a year – a life.
Outline
The remodeled Korean Life Passages presents the main stages of life that Koreans go through from birth to death. It consists of 9 parts: birth, education, coming-of-age ceremony, government office and jobs, marriage and family, longevity banquet, healing, funeral rites, and ancestral memorial rites.
The previous exhibition had the same title and theme, and it was quite well organized, too. But most of its artifacts were of the nobility, so there had been some criticism that it represented only limited periods and classes. Therefore, through this remodeling work, we extended the time period and social classes so that visitors can find the cultural value of each life and feel the changes by time period.
Long-running topics have both universalities and particularities. In this regard, the identity of this exhibition is the combination of a common theme, the life of Koreans, and the particularity of the times and circumstances.
Emphasis of Remodeling
I personally think that the permanent exhibition is the whole of all the activities that the museum has conducted. And this is where I put the emphasis of this remodeling project on.
First, we added spot videos on the panels at each section intending to guide your circulation path as well as imprint the video images in your memory as you progress through the exhibit. Second, we installed multiple kiosks inside the exhibition hall where you can examine research materials of the NFMK, Encyclopedia of Korean Folk Culture, digital archives, etc. Using this device, you can find more information on the artifacts.
For the video, we made use of home videos collected from all over the country from 2017 to 2018. A variety of videos filmed by different media were digitalized and saved in our digital archive. We found them effective in delivering the subject because most of them were about life passage.
If you want further information about the artifacts, use our newly made digital labels. Those labels feature specific details that common labels can’t contain due to their size as detail shots and full descriptions. In addition, the Larchiveum Zone – a compound word of library, archive, and museum – where you can do both online searching and reading, is prepared to fulfill everyone’s academic curiosity.
Part 1_Birth
The exhibition starts with the beginning of life — birth. Back in the Joseon Dynasty, the succession of the family from father to son was a social norm, so every family prayed with all their hearts to have a son. People set an offering table to samsin halmeoni (the goddess of childbirth) to wish to have many children, especially sons. After the baby was born, they hung taboo ropes called geumjul to ward off evil spirits and announce childbirth. The placenta of a baby was buried underground or burned in the hope that the baby would be healthy and thrive. In traditional society where the infant mortality rate was high, people rarely celebrated childbirth before 100 days had passed. On the 100th day and 1 year of the baby’s life, they held parties to celebrate these important first milestones of life. Here, you can see some artifacts used for doljabi, the custom of anticipating the baby’s future by the object he or she picks up from the birthday table.
Modern Koreans celebrate the birth of their babies regardless of their gender. The entire process of labor is handled in the hospital today, which has caused many taboos and rituals connected to childbirth to disappear. But the 100th-day celebration and the 1st birthday party continue as representative customs of Korea.
Part 2_Education
When it comes to education, the Joseon government strived to build an ethical society through ethics education based on Confucianism such as samgangoryun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and five moral disciplines in human relationships). It emphasized Confucian virtues including filial piety, loyalty, and fidelity by awarding those who faithfully practiced them, and distributed Confucius Classics adding Korean subtitles and illustrations. Boys studied reading and writing at seodang (a village school) and went on to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such as 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or seowon (Confucian academy) to study deeply about Confucianism and history. Girls were taught hangeul (the Korean alphabet) at their homes so that they could write letters and read books for information.
Today, we learn most things needed for living at school. Unlike in the Joseon Dynasty, gender can't stop people from entering school and acquiring knowledge and skills. After students graduate from high school, they get to decide whether to attend a university or get a job. This section introduces the modern education course and the many different exams students take.
Part 3_Coming-of-Age Ceremony
The coming-of-age ceremony was a rite formalizing a person’s entrance into adulthood, which varied between times, social statuses, and gender. Noble families in the Joseon Dynasty held gwallye for men and gyerye for women complying with the Chinese book of etiquette, Family Rituals of Zhu Xi. Around the age of 20, with the presence of elders, boys tied their hair into top knots, sangtu, and wore various Confucian hats, chipogwan and gat, in sequence. After this procedure, they were given adult names, ja. And women around the age of 15 pulled back their hair into low buns, jjok, and wore ornamental hairpins, binyeo, to hold the buns in place. But in the case of women, the wedding ceremony substituted the coming-of-age ceremony. Moreover, boys from farming families had to go through jinsaerye, a ceremony of lifting a heavy stone, to be acknowledged as qualified workers of the community. You can check the related artifacts here.
The coming-of-age ceremony today has been scaled down. When turning 19, people are automatically given legal rights as independent individuals. Resident registration cards and ballots are displayed in this showcase.
Part 4_Government Office and Job
The Joseon Dynasty was a strictly hierarchical society. But legally, it was not completely impossible to climb the social ladder by excelling in the state examinations. Because the Joseon Dynasty was a Confucian society where academic achievements were highly admired, people respected government officials more than military officers. The sort of available professions differed according to one's social status and gender.
Seunggyeongdo informs about the government posts in the Joseon Dynasty. This is a genre painting by Kim Jun-geun, Sineunsinnejitgo. It described the hazing ceremony where a group of seniors teased newcomers. You can also see choheon, a single-wheel carriage that officials of second or higher rank rode on, and maninsan, an embroidered parasol presented to a governor with gratitude. Please don’t miss them.
As the social hierarchy was abolished due to the Gabo Reform in 1894, social discrimination such as job restrictions gradually disappeared. This showcase introduces such jobs that have existed since the Joseon Dynasty with some major and minor changes - jipjureup (a realtor) and maebungu (a cosmetics peddler). You can see the related artifacts including paeji (a house contract) and bakgabun (a makeup powder).
Today, all individuals can choose their careers based on their abilities and aptitudes, and serve as contributing members of society. The statistics on the tablet show this change.
Part 5_Marriage and Family
The wedding procedure has changed as well.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hinese book of etiquette, Family Rituals of Zhu Xi, was adopted to local Korean traditions such that the wedding ceremony was held at the bride’s house. On the same day or three days after the wedding ceremony, the newlyweds went back to the groom's house to greet his ancestors and hold pyebaek (formal greeting ceremony) to the family elders. With a traditional wedding hall in the center, various wedding artifacts from the Joseon Dynasty and the modern age are displayed on both sides. You can compare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periods.
Back in the Joseon Dynasty, it was natural that the son succeeded the family lineage from his father, and men and women had different roles in the family. In the present day, however, all family members are considered equal and the form of family has become more varied.
Part 6_Longevity Banquet
The longevity banquet is called suyeonrye and in Korea, it mainly refers to the sixtieth birthday party. In the Joseon Dynasty, people held a banquet on the sixtieth birthday of family elders. Living until the sixtieth birthday meant longevity back then, so the descendants took it as a blessing and celebrated it with relatives and friends. Here, our collections including Aeildanggugyeongcheop show the sincere love and respect of descendants toward their parents.
As the expected life span became much longer, the sixtieth birthday banquet was replaced with a family dinner or trip. Suyeonrye is held for the seventieth or eightieth birthday, not the sixtieth. In this part, you can see how the form of suyeonrye has changed over time.
Part 7_Healing
Aging is sometimes accompanied by illnesses. Peo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ent to hanyakbang (a traditional Korean medicine shop) when they got sick. The doctors used to refer to the old Chinese medical books, but since Donguibogam, the Korean medical encyclopedia compiled by Heo Jun1539-1615, was distributed, they tried various therapies from that book, such as acupuncture, moxibustion (a heat therapy), and herbal medicines.
Today, along with traditional medicine, western medicine is applied in many ways to cure patients. Western medical supplies and medicines are on display, so you can compare the two styles of treating illnesses. In addition, the Korean folk remedy is introduced in the form of experiential content on the wall.
Some people relied on supernatural powers such as talismans or shamanism to prevent and cure disease. You can see the related artifacts and a video here.
Part 8_Funeral Rites
Sangrye refers to the entire funeral procedure from burying the corpse to getting back to daily life. Back in the Joseon Dynasty, samnyeonsang (the three-year mourning period) was one of the primary duties of descendants. They prepared colorful, splendid biers for their parents' last journey, and buried grave goods so that they could use them in the after-world. During the three years, the mourner (usually the eldest son) stopped his work and stayed at a shabby hut near the grave to serve his final duty toward his deceased parents.
There have been a lot of changes in the funeral procedures since the time and culture have changed. Today, funeral rites have become quite simplified with a distribution of the Family Ritual Standard, but the sincere heartfelt mourning remains the same.
Part 9_Ancestral Memorial Rites
Jerye means the rites of mourning and commemorating the deceased ancestors. In the Joseon Dynasty, holding jerye was considered the ultimate form of filial piety. The descendants built ancestral shrines in the yards, or alcoves in the house, and preserved the memorial tablets of four generations of ancestors: their great-great-grandparents, their great-grandparents, their grandparents, and their parents. The ancestral rites for these four generations of ancestors were held on their death anniversaries and holidays.
Since the Joseon Dynasty, the jerye customs are changing rapidly as the concept of filial piety has changed due to the influence of religions other than Confucianism. But, the heart of respecting ancestors and wishing for the prosperity of the family is not much different today than in the past.
Representative Artifacts and Features
Well, there are a broad range of artifacts in this exhibition, and I think I’ve explained them to a certain extent, so here, I’m going to briefly talk about the changes between the past and present.
In the past, people hung geumjul across the gate of the house to restrict visitors' access, and made the first seaweed soup with rice and seaweed offered on the samsinsang (ritual table for the god of birth), both of which are hardly seen these days. As for the wedding, saeksilcheop (a pouch for colored threads) was the most popular wedding gift in the past, while in modern society, such as the 1970s, sewing machines took the position. Traditional wedding costumes, wonsam (a ceremonial robe) and hwarot (a wedding overcoat), have also been replaced with white wedding dresses. The rules of what to wear during the funeral rites were settled following bokcha (chart for appropriate mourning clothes) and suuicheoksubalgi (document on the types, fabric, and sizes of shrouds), whereas in the present day, they are simplified due to the Family Ritual Standard.
In addition to them, some artifacts here may evoke empathy from visitors: Taegyosingi, the prenatal care guidebook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prenatal care by fathers, a father-in-law's letter to his daughter-in-law comforting her for failing to deliver a baby son, and Cheonincheonjamun, the Thousand Character Classic completed by a thousand people writing a character one by one. The modern and contemporary items including a school poster, textbooks, notebooks, school bags, and health records will also take you back to the days of school life.
Viewing Points
A variety of Immersive content also welcomes visitors. In an effort to increase the understanding and immersion, we've displayed a host of Immersive media in this exhibition.
The video in the prologue embodying the encounter between the past and present gives us a clue about the exhibition. Interesting experiential content, such as doljabi, AR pyebaek, pyebaek quiz, tangram puzzle, and gonunori, is available all over the exhibition hall. Old Korean folk remedies were interpreted and made into graphic content for better readability. Especially, the mask dance and shamanic ritual content were made in collaboration with their preservation societies, so you can get a vivid impression of these aspects of Korean culture. In addition, the experiential space inside seodang where the technology and analog are combined will give you joyful viewing moments.
Life goes on from the moment of birth to death. Customs are continuously changing with the passage of time, but the wish for longevity and happiness is timeless. Hopefully, our newly remodeled exhibition, Korean Life Passages, will provide you with comfort amid today’s challenges. Thank you.
Translator: KO Hyeongmin
Copy Editor: Ka Ya-geum
Mike Binning
陈列展厅3 韩国人的一生
国立民俗博物馆重新改编陈列展厅3“韩国人的一生”主题,并于2021年12月28日开始向参观者开放。陈列展厅3以人生仪礼为中心,展出从朝鲜时代到现代,韩国人从出生到死亡所经历的主要过程。
展览企划背景与目的
大家可能会好奇为什么要改编陈列展厅。其中有很多原因,以下解释可以明确说明做出该决定的理由。
国立民俗博物馆为了提高常设展览之间的联系性,更加井然有序地向前来博物馆的参观者展现韩国人的生活,分别于2018年、2020年以及2021年将陈列展厅1、2、3重新改编为“韩国人的一天”、“韩国人的一年”与“韩国人的一生”。这是国立民俗博物馆的中长期项目,旨在更清晰有序地呈现以“一天-一年-一生”相衔接的生活整体内容,使其更具连贯性。
展览概要
重新改编的“韩国人的一生”展出韩国人从出生到死亡的主要过程,由出生—教育—成年礼—官职和职业—婚礼和家庭—寿宴仪式—治疗疾病—丧礼—祭礼等9个主题和游戏主题空间构成。
此前陈列展厅3的主题也是“韩国人的一生”,以冠婚丧祭为中心进行设置,结构紧凑且完善。但由于仅以朝鲜时代士大夫为中心进行展示,所以存在时代和阶层的局限。因此在此次改编中,扩大了时代和阶层,重新调整了小主题的构成内容。通过将时代扩展到现代、阶层扩大到普通百姓,不仅能够让参观者感受到各时代韩国人的人生中所蕴含的价值体系,还能了解过去与现在的变化。
长期持续的主题具有普遍性与特殊性。改编后的该展览在围绕人生仪礼展开的“韩国人的一生”这一主题的统一性上,增加了符合时代和情况的关联性。
改编的重点内容
常设展览是对此前进行的特别展和各种事业成果的总结。所以将重点放在此处进行了改编。
在陈列展厅3中,各个导入部均配备了展示说明面板和代表性形象的“Spot影像”,用于引导参观路线,并在结束参观后通过Spot影像呈现的代表形象加深参观者对展览内容的印象。此外,还结合展览主题,准备了利用国立民俗博物馆的调查研究成果、《民俗大百科全书》以及档案等成果的搜索空间。编辑了2014年出版的《韩国人生仪礼词典》,在从出生到祭礼的各部主题展示区内设置了搜索空间,以补充完善展品相关信息。
资料视频是2017年到2018年期间,国立民俗博物馆通过官网向全国民公开收集的家庭录像资料。收集当时,将VHS录像带等多种媒体的原件进行了数字化,保存为档案资料。其内容大部分是以纪念日等仪礼为中心拍摄的家庭录像,非常适合作为现代普通人的人生仪礼相关资料。
新制作的数码标签中增加了普通说明标签因大小限制而无法包含的内容、原本无法窥视到的内部内容等详细资料,放大图像可以呈现展品详情,满足人们的好奇心。此外,在可以利用数码进行搜索的同时,还准备了可以翻阅纸质书籍的空间。在展厅内提供多种资源服务的larchiveum发挥着综合文化空间的作用,努力满足参观者的需求。
第1部. 出生
进入各部内容,首先呈现的是出生部分。
在朝鲜时代,家族继承的社会惯例是父子相传,因此每个家庭都渴望得子。大多数家庭会向三神奶奶祈愿“子孙繁昌”,并祈求生出健康的男婴。孩子出生后会在大门上挂上禁绳以示生子,同时起到阻挡邪祟入侵的作用。胎盘被放入胎缸里,埋在干净的地方或者烧毁,以此祈愿孩子茁壮成长。过去婴儿的死亡率较高,因此通常在孩子出生100天后举行百日宴以示庆祝,一年后举行周岁宴,通过抓周来卜测孩子的未来前程,通过展品可以详细了解这部分内容。
如今,无论生男生女都会庆祝新生命的诞生,而且因为主要在医院分娩,所以有关生育和产后的禁忌以及仪礼也正在逐渐消失。但是,通过庆祝百日和举行周岁宴来祈愿孩子健康成长的风俗至今仍在延续。
第2部. 教育
下面进入教育部分。朝鲜时代推行基于三纲五常的儒家伦理教育,力图建立道德社会。国家表彰孝子、忠臣与烈女,将《三纲行实图》翻译成韩文,以图文形式进行普及推广。男子在书堂里学习读书写字等,并为了准备科举考试,在乡校或书院学习儒家典籍或史籍,女子则在家中接受韩文教育,以在生活中粗通文字,并通过书信往来或从韩文译本中获取新信息,增长见识。
如今,人们主要通过学校教育学习生活所需的知识和技能等。而且不同于朝鲜时代,不论男女都可以依次通过幼儿园、小学、初中和高中等教育阶段学习和掌握知识。高中毕业或完成相当于该过程的学业教育后,根据自己的才能和意愿,为升入大学或进入职场而参加各种考试或接受测评。
第3部. 成年礼
成年礼是孩子长大后,承认其具有成人资格的人生仪礼,根据时代、阶层和性别的不同,形式各不相同。朝鲜时代的两班家庭受中国《朱子家礼》的影响,男子行“冠礼”,女子行“笄礼”,以示成年。男子在20岁左右时举行冠礼,在家中长辈面前绾好发髻,依次戴上缁布冠、黑笠帽等冠帽,并被赐予作为成人的名字“字”。女子笄礼的做法是到15岁左右,将头发绾成一个髻,并插上发簪。不过,女子的成年仪礼式一般以婚礼代替。农家男子到了一定年龄后会举行入世礼,从村落共同体那里接受针对体力和操作农具技术的评判,之后被接纳为成人。通过举石等相关资料可以了解这部分内容。
如今的成年礼比过去简化了许多。满19岁就可以被认为是成年人了,承认其是一个具有独立人格的主体,即便没有法定监护人的同意也可以独立行使法律行为。通过居民身份证、投票券及驾驶证等展品可以了解相关内容。
第4部. 官职和职业
朝鲜时代虽然是一个严格讲究身份地位的社会,但与壁垒森严的社会制度不同,在法律上可以通过科举考试来提升个人身份。在重教崇学的儒家社会中,文官的社会地位优于武官,而且由于注重身份差异和性别差异,个人可以获得的地位和从事的职业范畴各不相同。官职和职业部分对上述内容进行了详细介绍。
通过《升卿图》可以了解朝鲜时代的官职体系。箕山风俗画《戏弄新恩新来》描绘了科举中举者在进行用三天时间拜访考官、前辈中举者、亲戚等的“三日游街”时被戏弄的场景。从中可以窥见前辈们祝贺并戏弄中举者的申告仪式。从2品以上的官吏乘坐的独轮车“轺轩”和乡民们为纪念地方官吏的功德而献上的阳伞“万人伞”等是难得一见的收藏品,值得着重参观。
1894年甲午改革后,身份制度被废除,随着社会的变化,职业限制等区别对待也逐渐消失。像家侩(又名舍侩,传统房屋中介商)和卖粉妪(传统化妆品商贩)等职业其形式虽有所变化,但自朝鲜时代起一直存在并延续了下来,而其他一些职业却消失了,同时也出现了一些新的职业。通过“朴家粉”、“牌旨(买卖文书)”可以了解有关职业发生变化的内容。如今,在职业的选择方面男女之间没有区别,人们根据自身条件和能力选择各种各样的专业化工作,个人可以通过参与社会活动,作为社会的一员发挥自己的作用。通过统计资料可以详细了解该部分内容。
第5部. 婚礼和家庭
婚礼的流程随着时代变迁而变化。朝鲜后期的婚礼流程是将中国家庭仪礼著述《朱子家礼》中的规定和朝鲜传统惯例进行折中后形成的,新郎先在新娘家举行婚礼,仪式当天或三天后再回到自己的家中祭告祖先,向父母行币帛礼。展厅内以再现传统婚礼现场的醮礼厅为中心,左右两侧分别陈列着朝鲜时代和现代的婚礼相关展品,通过比较婚礼流程,可以了解婚礼场所和婚礼服等的对比及变化。
在朝鲜时代,建立家庭、子承父业对于子女而言是天经地义的事情,为了传承家风,维护家门的平安,男女被赋予了不同的角色和义务,在今天,家庭成员的角色没有特别的区分,家庭形态也从大家庭转变为核心家庭,逐渐多样化。通过照片、相关资料可以了解这部分内容。
第6部. 寿宴仪式
寿宴顾名思义是庆祝长寿的宴会,通常指回甲宴。在朝鲜时代,家中长者年满60周岁的寿诞,称为回甲或还甲,举行寿宴仪式以示庆贺。当时60岁以上即意味着长寿,子孙们对此感到荣幸,会邀请亲朋好友一起庆祝寿诞,并通过寿宴仪式表达自己的孝心。通过《爱日堂具庆帖》等多种展品可以详细了解这部分内容。
如今,随着人类寿命的延长,回甲时比起寿宴仪式,家人一起聚餐或安排纪念旅行的庆贺方式更加普遍,寿宴仪式则大多安排在七旬或八旬寿诞时举行。这一部分展示了祝贺和祈愿长寿的仪礼随时代变迁的变化。
第7部. 治疗疾病
随着年龄的增长,人们逐渐更为频繁地生病。在朝鲜后期,生病或身体虚弱时会到药房接受治疗。韩药房主要参考中国的医学书籍进行治疗,但在许浚(1539~1615年)的《东医宝鉴》普及开来后,则更有效地采取针灸治疗或配制药剂对症下药。如今,韩医和西医共同承担着疾病的治疗,在这一部分可以比较利用科学技术的医疗用具等西医相关资料与韩医学资料。此外,还可以通过相关资料和体验视频了解传承下来的民间疗法相关内容。
也有一些人希望借助巫术或符籍之类的咒术等超自然力量来预防疾病或获得安慰,通过再现黄海道巫厅的陈列场和治病巫术影像展示了这部分内容。
第8部. 丧礼
丧礼是指把逝者埋入地下,并完成守孝脱丧的仪式。在朝鲜时代遵循儒家的“孝”伦理,把“三年丧”视作子女应尽的义务。子女们用华丽的丧舆送逝者最后一程,在墓地里同时埋入明器等随葬品以供逝者来世生活所需。三年丧期间,子女要辞去官职或停下农活,在家中设丧厅或者在墓地旁搭建庐舍守丧,为去世的人尽最后的孝道。
随着时代的发展和生活环境的变化,丧礼的流程和文化发生了很大的改变。如今,韩国随着《家庭仪礼准则》和殡仪服务等的普遍化,埋葬和火葬等丧礼仪式越来越简化,不过对逝者的哀悼意义并没有改变,仍在延续。
第9部. 祭礼
祭祀是在固定日期祭奠逝去祖先的仪式。在朝鲜时代,将“人子奉亲,事死如事生”视为至孝。按照儒家的祭礼,在家里建造祠堂或制作神龛,供奉高祖父母、曾祖父母、祖父母和父母等4代祖先的神主(牌位)。子孙后代们在4代祖先的忌日、春节和中秋等节日举行祭祀以求先人保佑。
与朝鲜时代不同,如今人们脱离儒家理念,在各种宗教的影响下,有关“孝”和祖先的观念都发生了变化,祭礼习俗也在迅速发生变化。即便如此,慎终追远,缅怀祖先的同时,祈求子孙平安和家庭和睦的情形,无论过去还是现在都是大同小异的。
代表遗物及特点
陈列展厅3展出着数量庞大种类繁多的遗物和资料,在说明上述各部主题的同时,也穿插着介绍了展品,在这里以过去和现代的变化情况为中心进行一下简单介绍。
过去家中有孩子出生时会在大门上挂上“禁绳”,阻止外人出入,用摆在三神床上的大米和海带为产妇做第一顿饭汤,但现在随着在医院分娩的情况增加,禁绳和三神床也逐渐消失了。在过去,“色丝帖”是非常重要的结婚用品,而到了20世纪70年代,“缝纫机”则尤为重要,女性的婚礼服也由过去的圆衫和阔衣变成了现代的婚纱。在丧礼方面,过去有根据逝者亲属关系的亲密程度,记录家人、亲戚所穿丧服的“服次”、寿衣名称和材质等的《寿衣尺数件记》,现如今则根据《家庭仪礼准则》简化了丧服和流程。
此外,强调父亲胎教重要性的胎教指南《胎教新记》、公公为安慰没能诞下男婴的儿媳而写的“韩文信”,以及承载着向孩子传达千人的智慧,祈愿其学术有成和健康成长等美好心愿,由一千个人各写一字制成的“千人千字文”,这些都能引发参观者的情感共鸣。另外,近现代展品“我们是一年级”、“国语和算术教科书”、“综合帐”、“书包”、“健康记录簿”等也将唤起参观者对过去的珍贵回忆。
展览看点
陈列展厅3中也使用了生动的媒体影像。相比采用最新技术,实感内容更注重通过适合展览的内容加深参观者对展览的理解,对博物馆藏品的充实诠释旨在提高参观者的沉浸感。
序章影像通过以抒情形式表现的韩国人的一生,呈现了过去和现代的相遇与循环,对后续展开的展览给出了提示。展厅内准备了抓周、使用平板电脑和AR展现的币帛礼场面、币帛摆桌知识竞猜、七巧板游戏和高垒游戏等多种体验。还对民间疗法的内容进行了诠释,制作成了文本及图像内容,尤其是为了提高参观者对展览的理解度以及展览的完成度,通过保存会的演示对假面戏、巫厅等内容进行了拍摄、制作。此外,还准备了书堂文字图绘制和趣味教学等数字与模拟相结合的体验空间,带来更加有趣的展览体验。
人从出生到死亡所经历的一生不断变化和延续。随着时代的变迁,风俗和意义也发生了改变,但祈求长寿和福气的美好心愿是贯穿时代的价值。希望全新改编的陈列展厅3“韩国人的一生”能为大家的人生旅途带去些许慰藉。谢谢大家。
中文翻译 : 柳志沅
中文编辑 :岳皓冉
常設展示室3 韓国人の一生
国立民俗博物館は、常設展示室3<韓国人の一生>の展示内容をリニューアルして、2021年12月28日から公開しています。常設展示室3は朝鮮時代から現代まで、韓国人が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に経験する主な過程を、通過儀礼を中心に展示しています。
展示企画の背景と目的
では、なぜ常設展示をリニューアルしたのか。様々な理由がありますが、次のようにご説明できます。
当館は各常設展示間の連携性を高め、観覧客に韓国人の暮らしをよりしっかりと伝えるために、2018年には常設展示室1を<韓国人の一日>に、2020年には常設展示室2を<韓国人の一年>に、2021年には常設展示室3を<韓国人の一生>に一新しています。これは、「一日」「一年」「一生」へと繋がる暮らし全般に連続性を持たせて展示するための当館の中長期プロジェクトです。
展示概要
新しくなった「韓国人の一生」では、韓国人が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に経験する主な過程を展示しています。「出生」「教育」「成人式」「官職と職業」「婚礼と家族」「寿宴礼」「治癒」「喪礼」「祭礼」の9つの部ごとのテーマと、別のテーマ空間である「ノリ(レクリエーション)」で構成されています。
リニューアル前の常設展示室3のテーマも<韓国人の一生>であり、冠婚葬祭を中心によくまとまった構成の展示でした。ただ、朝鮮時代の士大夫を中心とした内容だったため、時代と階層に限界がありました。そのため、今回のリニューアルでは時代と階層を拡張し、小テーマの構成内容を再調整しました。時代は現代まで、階層は一般庶民まで広げることによって、時代ごとの一生に内包された価値体系のみならず、過去と現在の変化像を感じ取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ました。
長い間続いているテーマは普遍性と特殊性を有しています。つまり、通過儀礼を中心とした韓国人の一生というテーマの統一性に、時代や状況に合った柔軟性が加わった展示であると言えます。
リニューアルにおける注力点
常設展示は、これまで行われてきた特別展や様々な事業の成果物の総まとめであると考えられます。それで、そこに重点を置いてリニューアルを行いました。
新しい常設展示室3では、各部の導入部ごとに、展示説明パネルとともに代表イメージの「スポット映像」を配置して観覧ルートを誘導し、観覧後にはスポット映像の代表イメージが展示内容に対する残像として残るように意図しました。また、展示のテーマと連係し、当館のこれまでの調査研究の成果物と、『民俗大百科事典』やアーカイブなどの結果物を活用した検索コーナーを設けました。2014年に発刊した『韓国一生儀礼事典』を編集して、「出生」から「祭礼」まで、各部ごとのテーマの展示エリア内に検索コーナーを設け、展示品についてより多くの情報が得られるようにしました。
資料映像は、2017年から2018年まで、当館のホームページを通じて全国民を対象に収集したホームビデオ資料を活用しました。収集当時、VHSビデオテープなど様々な媒体のオリジナルデータをデジタル化して、アーカイブ資料として保存しました。その内容のほとんどは、記念日などの儀礼を中心に撮影されたもので、現代韓国人の通過儀礼に関する資料として非常に適切なものとなっています。
新しく制作したデジタルボードには、通常の説明ボードではスペースの関係で入り切らない内容を含めたり、展示品のイメージを拡大してよく見えない部分も細かく確認できるようにしたりするなど、詳細資料を追加して疑問を解消できるようにしました。さらに、デジタルを利用した検索とともに、紙の本が読めるスペースも設け、展示室内で様々な情報資源を提供するラーキビウム(larchiveum=図書館(library)+アーカイブ(archive)+博物館(museum))、つまり、複合文化空間としての役割を果たし、観覧客のニーズに応えるために取り組みました。
第1部 出生
各部ごとの展示は、まず「出生」から始まります。
朝鮮時代には父から息子へと引き継がれる家系継承が社会的な慣習だったため、どの家でも息子の出生を切実に願いました。ほとんどの家では、三神婆(産神)に「子孫繁栄」と元気な男児の出産を祈願しました。出産後には、表門に「クムチュル(禁縄)」を掛けて子どもの出生を知らせ、邪気を払い、胎(へその緒・胎盤)を胎壺に入れて清潔なところに埋めたり燃やしたりして、子どもの健やかな成長を祈りました。乳児の死亡率が高かったため、子どもが生まれて100日後に宴を開いて百日を祝い、1年後にはトルチャンチ(初誕生の宴)を開き、トルジャビ(選び取り)を行って子どもの将来を占う内容の展示品が並んでいます。
今では性別に関係なく子どもの出生を祝います。主に病院で出産するようになったため、出産と産後の禁忌や儀礼はなくなりつつあります。しかし、生後百日を祝ってトルチャンチを開き、子どもの健やかな成長を願ってお祝いする風習は今も続いていることが展示からうかがえます。
第2部 教育
次の「教育」に進んでみましょう。朝鮮時代には、三綱五常に基づく儒教的倫理教育を通して道徳的な社会を築こうとしました。国では孝子・忠臣・烈女を表彰し、『三綱行実図』などを絵とともにハングルで記述して普及させました。男子は書堂(ソダン)で文の読み書きなどを学び、科挙試験に備えて郷校(ヒャンギョ)や書院(ソウォン)で儒教経書や歴史書を勉強しました。女子は家でハングル教育を受けて字の読み書きができるようになり、手紙を交わしたりハングル書籍から新しい情報を得て知識の幅を広げていきました。
今は、人間として生きる上で必要なことを主に学校教育を通して身に付けます。朝鮮時代と違い、男女の区別なしに、幼稚園、小学校、中学校、高等学校などで知識を学ぶことが一般的です。高校を卒業するか、その課程に該当する学業を終えると、適性に合わせて大学へ進学したり仕事に就いたりするために、様々な試験に挑む内容が展示されています。
第3部 成人式
成人式は、子どもが成長して大人になったと認められる儀礼のことで、時代や階層、性別ごとに異なりました。朝鮮時代における両班(ヤンバン)の家では、中国の『朱子家礼』の影響により、男子は「冠礼」、女子は「笄礼」という成人式が行われました。男子は20歳前後に、家の年長者の前でサントゥ(まげ)を結い、緇布冠(チポグァン)やカッ(黒笠、笠子帽)などの冠を順に被り、成人の名前である「字(あざな)」を与えてもらう冠礼を執り行いました。女子は15歳前後に、髪の毛を後ろで丸く束ねて簪(かんざし)を挿す笄礼を行いましたが、一般的に婚礼を笄礼の代わりとしたことが紹介されています。また、農家の男子は一定の年齢になると「チンセ[入世]礼」を執り行い、村の共同体から力と農具を扱う技などが評価されてから成人として認められたことを、力石などの関連資料から確認できます。
現代の成人式は過去と比べて縮小されましたが、満19歳になると独立した人格の成人として認められ、法定代理人の同意なしに法律行為を行うことができることが、住民登録証や選挙権、運転免許証などの展示品を通して紹介されています。
第4部 官職と職業
朝鮮時代は厳格な身分社会でしたが、厳しい社会制度とは別に、法的には科挙試験を通して身分の上昇が可能な社会でした。学問を崇めた儒教社会では、武官より文官を優遇しました。身分と男女の性別に区分を設けたため、就くことのできる地位や職業の範囲が異なったことを、官職と職業では紹介しています。
「陞卿図(スンギョンド)」という遊びを通して、朝鮮時代の官職体系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箕山(キサン)風俗画の「新恩新来をからかう」は、科挙の及第者が三日間、試験官や先輩、親戚などを訪れてあいさつ回りをする風習の「三日遊街」を行った際に、及第者がからかわれる姿を描いた絵です。先輩たちが及第者を祝いながらいじるという、科挙のしきたり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ます。宗二品以上の官吏のみが乗ることのできた一輪車の「軺軒(チョホン)」、地域の人たちが地方官の功績を称えて感謝の意味で捧げた日傘の「万人傘」などは、滅多に見られない所蔵品なのでぜひご注目ください。
1894年の甲午改革の後、身分制度が廃止され、社会変化により職業制限のような区分は徐々になくなりました。家儈(家の売買仲介)や売粉嫗(化粧品の訪問販売員)など、形は変わっても朝鮮時代から続いてきた職業があった一方で、無くなったり新しくできたりするなど、職業に変化が起きた内容を、「パッカブン(朴家粉)」や「牌旨(売買文書)」などの展示品を通して確認できます。今日では、男女の差別なしに、条件や能力によって多様で専門化した仕事を選択し、個人が社会に参加して社会の一員としての役割を果たせ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統計資料を活用して紹介しています。
第5部 婚礼と家族
婚礼の手順は時代によって変化してきましたが、朝鮮後期には、中国の家庭儀礼書である『朱子家礼』に記された婚礼の手順と、古くから行われてきた慣わしが折衷して、新郎が新婦の家に行って婚礼を挙げました。式の当日か三日後に新郎の家に戻ってきて先祖に報告し、両親に挨拶して幣物を捧げる儀式の幣帛(ペベク)を行いました。展示室には、再現された醮礼庁(結婚式場)を中心に、左右のそれぞれに朝鮮時代と現代の婚礼にまつわる展示品があり、婚礼の段取りを比較しながら、式を挙げる場所や婚礼服など、その変化が感じられるように構成しました。
朝鮮時代は、家族を築き、父から息子へと引き継がれる家系継承は子どもの道理であり、家風を継ぎ、家の平和のために男女の役割と義務がそれぞれ別に与えられていました。しかし、今日では、家族構成員の役割は区別されず、家族の形態も大家族から核家族に変わるなど、次第に多様化していくことが、写真や関連資料を通して紹介されています。
第6部 寿宴礼
寿宴礼は長寿を祝う宴で、通常、回甲(還暦)の祝宴を示します。朝鮮時代には、家の年長者が満60歳の誕生日を迎えると、回甲・還甲といって寿宴礼を催しました。当時、60歳以上になることは長寿とされたため、子孫たちはこれを光栄に思い、親戚や友達を招いて還暦を祝い、寿宴礼を開くことで孝心を表したことが『愛日堂具慶帖』など様々な展示品を通して紹介されています。
今日では人間の寿命が長くなり、回甲(還暦)の時には寿宴礼より家族との食事や記念旅行が一般化し、70歳や80歳に寿宴礼を行うことが多くなっています。このように長寿を祝い祈願する儀礼は、時代とともに変化していることが展示から分かります。
第7部 治癒
人は年を重ねるにつれ病気にかかりやすくなります。朝鮮時代後期には、病気になったり身体が弱くなったりすると薬房で治療しました。韓薬房では中国の医学書を参考にしてきましたが、許浚(ホ・ジュン、1539~1615)の『東医宝鑑』が普及すると、病気の症状に応じて鍼灸を施術し、薬を調剤して治療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今は、韓医学とともに西洋医学で病を治療します。科学技術を利用した医療用具など、西洋医学にまつわる資料と韓医学の資料を比較してみることができます。さらに、古くから伝わってきた民間療法についても、関連資料と体験映像を通して紹介しています。
一部の人々は、グッ(巫儀)や護符のような呪術など、超自然的な力に頼って疾病を予防したり慰めを得ようとしたことを、黄海道(ファンヘド)のグッチョン(巫儀を行う場所)を再現した展示と治病グッの映像を通して紹介しています。
第8部 喪礼
喪礼は、亡くなった人を埋葬して喪中を終えるまでの儀礼をいいます。朝鮮時代には「孝」という儒教的倫理に従い、三年の喪が子どもの果たすべき道理だと考えられました。子孫たちは、故人の最後を華やかな喪輿(サンヨ)に載せて送り、来世で生活するために使う容器として明器を共に埋葬しました。三年の喪の間、子どもたちは官職や農業を休み、家に喪庁を設けたり、お墓のそばに廬幕(ヨマク:喪屋)を立てて、故人のために最後まで孝行を尽くしました。
喪礼の手順と文化は、時代の流れや生活環境によって大きく変化しました。今日では、「家庭儀礼準則」や葬儀屋などが一般化し、埋葬や火葬など、喪礼の簡素化が進んでいますが、故人への哀悼の意味は変わらず続いています。
第9部 祭礼
祭祀は先祖を祀り追慕する儀礼です。朝鮮時代には、先祖が生きているかのように仕えることが最高の孝行と考えられました。儒教的祭礼に従い、家に祠堂を建てたり壁龕を設けて、高祖父母・曾祖父母・祖父母・父母の四代の位牌を祀りました。子孫たちは四代の先祖の命日やソル(旧暦1月1日)・秋夕(チュソク:旧暦8月15日)などの名節(祝日)に祭祀を執り行い先祖を祀りました。
今では、朝鮮時代と違い儒教理念から離れ、様々な宗教の影響によって孝や祖先に対する観念が変わり、祭礼の慣習も急速に変化しています。しかし、祭祀を通して先祖を祀り子孫の平和と親族の和合を図る姿は、昔も今も、さほど変わっていないことを紹介しています。
代表的展示品と特徴
第3室には膨大な展示品と資料が展示されています。前述した各部ごとのテーマの説明とともに展示品についても所々説明しましたので、ここでは、過去と現代の変化の様子を中心に簡単に紹介します。
昔は、家で子どもが生まれると、表門に「クムチュル(禁縄)」を掛けて外部の人の出入りを防ぎ、三神床(サムシンサン:産神へ捧げるお供え膳)に載せたお米とワカメでご飯とクク(スープ)を作って産婦に食べさせましたが、今では病院での出産が増え、クムチュルも三神床も消えつつあることが分かります。婚礼においては、過去に重要とされた嫁入り道具は「色糸帖(糸入れ)」でしたが、1970年代には「ミシン」が重要とされました。女性の婚礼服も、昔は「ウォンサム(円衫)」や「ファロッ」だったのが、現代ではウェディングドレスに変わりました。喪礼の場合、過去には故人との親等によって家族・親族が着るべき喪服について記された「服次」、寿衣(スウィ:死装束)の名称と材質などを記録した「寿衣尺数件記」などがありましたが、今は「家庭儀礼準則」によって喪服や手順が簡素化されたことが分かります。
その他に、父親の胎教の重要さを強調した胎教指針書である『胎教新記』、男児を出産できなかった嫁を慰める舅の「ハングルで書かれた手紙」、子どもに千人の知恵が伝わり学問の成就と健康を祈る心を込めて、千人を訪ねて一文字ずつ書いてもらって作り上げた「千人千字文」には、真心に対する情緒的な共感を覚えます。また、近現代の展示品の「私たちは1年生(掛図)」「国語と算数の教科書」「学習帳」「カバン」「健康記録簿」などは、観覧客の記憶の中の大切な思い出を蘇らせることでしょう。
注目ポイント
常設展示室3でも実感型コンテンツを活用しました。実感型コンテンツは、最新技術の適用よりも展示に適したコンテンツを通して展示への理解を深めることが目的であり、当館の所蔵品に対する充実な解釈が観覧客の没入感を高めるという趣旨で実現しました。
プロローグでは、叙情的に表現した韓国人の一生の映像を通して、過去と現代の繋がりと循環について知り、これから展開する展示を予測できるようにしました。トルジャビ(選び取り)、タブレットとARを活用した幣帛(ペベク)の様子、クイズで分かる幣帛のお膳、伝統遊びの七巧図(タングラム)とコヌノリ(盤上の駒を動かす対戦ゲーム)など、様々な体験のできるコーナーが設けられています。民間療法の内容を解釈してテキストとグラフィックコンテンツ化し、特に、伝統芸能のタルノリ(仮面劇)やグッチョン(巫儀を行う場所)のコンテンツは保存会の試演を撮影・制作したもので、展示の完成度やその内容の理解度を高めるために取り組みました。なお、展示をより楽しんでもらえるよう、書堂(ソダン)での文字図描きや教科書学習など、デジタルとアナログが結合した体験スペースも設けました。
人が生まれてから死ぬまでに送る人生の姿は、絶えず変化し、繋がって続いていきます。時代によって風習と意味は変化してきましたが、長寿と幸せを祈る心は時代を貫く価値です。新しくなった常設展示室3<韓国人の一生>の展示が、皆さんの人生の道のりの中で、辛い時の慰めや癒しになれば幸い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日本語翻訳 河閔恵(ハ・ミンへ)
翻訳監修 志賀 可奈子(しが かなこ)、 Prolangs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