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전 시 명: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
ㅇ 전시장소: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전시실
ㅇ 전시기간: 2021. 10. 15.(금) ~ 2022. 03. 31.(목)
ㅇ 전시내용: 낯설지만 평범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의 일상
ㅇ 전시자료: 포로등록증, 거제도피난기, 일지, 등 80여 점
ㅇ 주 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관장 이수권)과 함께 2021년 10월 15일(금)부터 2022년 3월 31일(목)까지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에서《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 공동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번 공동기획전은 NARA(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서 소장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관련 사진들을 중심으로, 포로들의 수기와 인터뷰를 통해 6․25 전쟁 포로의 삶을 재현하고자 했다. ‘1부-캠프 넘버 원’ 에서는 포로수용소의 공간 구성과 그 안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포로의 생활’에서는 포로의 하루 일과와 특별한 행사가 진행된 날들을 소개한다.
1951년 거제도에 '캠프 넘버 원'이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제1의 포로수용소, '캠프 넘버 원'은 왜 하필 거제도에 설치되었을까? 최초의 수용소는 임시 수도 부산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점점 늘어나는 전쟁 포로를 수용하기에 부산은 부적합했다. 이에 유엔군은 새로운 수용소 부지로 거제도와 제주도를 고려하다가 결국 거제도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포로 관리에 최소의 인력과 경비가 소요되고, 급수가 용이하였기 때문이었다.
거제도 전체 면적(약 403㎢)의 1/60(약 6㎢)에 해당하는 크기의 포로수용소는 4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졌다. 각 구역은 6, 7, 8, 9라는 숫자로 구분 지었는데, 왜 1이 아닌 6부터 숫자를 매겼을까? 1950년 7월 먼저 생긴 부산 포로수용소가 다섯 개의 구역으로 구성되면서 1~5까지의 숫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1951년 1월 문을 연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6부터 9까지의 숫자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포로수용소에는 17만 명의 포로와 3만 명의 관리자 등, 거제 원주민의 두 배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로의 대부분은 중국군과 인민군 등 북측 군인이었으나, 군인이 아니어도 유엔군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경우 포로가 되었기에 여성과 아이들도, 피란민도 있었다. 다양한 국적과 이념만큼 포로들에게는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특히, 인민군으로 잡혀 포로가 된 아들과 포로수용소 문관(행정 인력)이 된 아버지의 가슴 절절한 상봉 이야기는 전쟁의 비극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 포로수용소에 살게 된 군인, 행정 인력, 통역원, 교육 교관, 의사, 사제 등도 있었다. 이들의 흔적은 포로수용소에 아직도 남아있는 무덤의 묘비, 그들이 남긴 편지와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로의 생활은 어땠을까? 수용소는 이른바 포로자치제로 운영되었다. 포로 중에서 뽑은 간부를 통해 포로를 관리하였으며, 포로들은 방송반과 신문반을 꾸릴 수도 있었다. 또한 포로들은 직접 작물을 가꾸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포로의 생활은 전쟁으로 굶주림이 일상이 된 수용소 밖의 삶과는 달랐다. 포로들은 하루 세끼의 식사뿐만 아니라 담배도 제공받았으며, 전투에 나가 생사를 오갈 일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국군이 되는 것보다, 피란민이 되는 것보다 포로가 되는 것이 낫다고들 했을까? 또한 포로들은 일과 안에서 한글 및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음악, 미술, 체육 등 다양한 여가 생활을 누렸다.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포로들의 그림, 공예품 등을 전시하는 박람회, 포로들이 직접 기획하고 공연하는 음악회, 연극, 포로들을 위한 일종의 체육대회인 포로올림픽이 열리는 특별한 날도 있었다.
사진 및 영상 아카이브 자료 등 총 80여 점을 선보인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낯설지만 평범한 포로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포로들이 느꼈던 슬픔, 기쁨 그리고 희망에 공감하며 다시금 평화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1 | 알바니 작전 조사 보고서
1951년│NARA 소장, 거제시 제공 알바니 작전 하에 신규 포로수용소 부지를 조사한 보고서이다. 제93건설공병대대가 거제도를 현지 조사한 내용과 거제도를 선택한 이유 등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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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포로등록증
복제품│1950년대│NARA 소장, 거제시 제공 포로가 포획된 날짜와 위치 등을 기록하는 카드 형태의 등록증이다. 포로 관리자는 포로등록증을 수용소에 입소하는 포로의 목에 걸어 신원을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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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문관 최중훈의 사진
복제품│1951년│최영철 기증,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수용소 문관(행정 인력) 최중훈의 근무 당시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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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거제도 피난기
복제품│1951년│최영철 기증,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수용소 문관(행정 인력)인 최중훈이 작성한 피란 일기, 북한군 포로로 잡혀온 아들과 상봉한 사연 등이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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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레이먼드 브레이크의 편지
복제품│1952년│레이먼드 브레이크 기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ththr 군인 레이먼드 브레이크(Raymond C. Brake)가 거제도에서 근무할 당시, 아내에게 쓴 편지이다. 부대에서의 일과와 포로 위생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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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배식을 받는 제93수용동 포로
1950년대│NARA 소장, 거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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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자유 담배
복제품│1950년대│최영철 기증,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포로가 보급품으로 받은 자유 담배, 앞면에 자유, 유엔군의 '선물, 정의 세계평화'가 뒷면에는 '自由, 正義, 世界平和' 등이 인쇄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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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포로 공연
1950년대│NARA 소장, 거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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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침구를 정돈하는 포로
1950년대│NARA 소장, 거제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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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제82수용동 문화신문
복제품│1951년│NARA 소장, 거제시 제공 제82수용동 포로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신문, 수용동 내 공연 홍보, 포로가 쓴 투고 등이 실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