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유현석), 정선아리랑연구소(소장 진용선),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관장 스도 겐이치)과 함께 ‘아리랑로드 해외순회전 : Arirang-The Soul of Korea'라는 제목으로 국립민족학박물관(2013.5.2~6.11 오사카 소재),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2014.8.29~10.28 관장 누르산 알림바이),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2014.9.3~11.2 관장 자나트 이스마일로바)에서 기획전을 연다. 이 전시에는 재일한인들의 아리랑 관련 이야기가 담긴 영상 및 아리랑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 393점(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아리랑 관련 이야기가 담긴 영상 및 아리랑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각종 자료 각 150건 227점(카자흐스탄), 93건 193점(우즈베키스탄)이 소개된다.
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이제 한국인들만의 유산이 아닌 세계인들의 유산이 되었다. 이러한 아리랑을 통해 세계인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지난해 4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막한 아리랑 기획전에 이어 ‘아리랑 로드-해외순회전’이라는 사업명으로 세계 주요 국가 박물관에서 순회전시를 추진 중에 있으며 2013년 5월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오사카 소재)을 시작으로 7월 도쿄 한국문화원, 2014년 미국, 2015년 러시아 등지에서 순회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전시의 주 관람객인 일본인들에게 아리랑이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생활 저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10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는 인기 브랜드 ‘아리랑’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필터 담배 ‘아리랑’과 더불어 성냥, 재떨이 등 아리랑 끽연류 관련품들도 전시될 예정이며 재떨이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놋쇠로 만든 재떨이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들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다. 한국 지도에 '아리랑'이라는 글씨를 한글과 영어, 일본어로 양각해놓고 테두리에 아리랑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을 새겨 놓은 재떨이이다. 또한 아리랑 색연필 등 각종 문방구류부터 아리랑 라디오까지 다양한 생활용품 소개로 우리 삶에 아리랑이 매우 깊이 자리 잡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아리랑 가사가 수록된 각종 관광엽서, 일본 관광객들을 위해 1934년 남대문에 있던 식당 ‘식도원’이 제작한 홍보 전단지 ‘조선보감(朝鮮寶鑑)’에 기생들의 아리랑 공연 광고 및 주요 음식 메뉴들은 아리랑을 매개로 한 당시 유흥문화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도 소개될 예정이다.
다양한 아리랑 음원을 직접 선곡하여 듣거나, 아리랑과 관련된 영상물을 편하게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등 관람객이 진열장에 있는 유물을 참관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전시주제와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 제공하여 보다 생생한 전시를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전시장 내에서 아리랑 공연 시도함으로써 전시에 생동감을 부여하였다.
이번 전시는 전문성을 지닌 국내외 각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데 의의가 있다. 각 기관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역량을 통해 아리랑의 해외 보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문화를 세계인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12년부터 전국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리랑 이야기와 자료 수집, 국내외 순회전을 수행하는 국내 최고의 아리랑 전문 기관.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교육·자료수집·아카이브를 하는 유일한 국립기관이다. 정선아리랑연구소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리랑 자료를 가지고 있는 아리랑 대표 기관. 아리랑뿐만 아니라 연구소 내 추억의 박물관을 통해 많은 근현대 소장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해외 유수의 박물관 등 주요 문화기관과의 다양한 한국학 진흥 사업을 통해 해외 사업 경험을 축척한 글로벌 기관이며, 이번 전시에서도 중앙아시아 현지 국민, 특히 고려인들의 취향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맞춤 공연단’을 파견했다. 향후 아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민속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하고자 최근 국립민속박물관과 문화협력협정서를 체결했으며 이번 전시는 양 기관의 첫 결과물이다. 전시가 열리는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과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은 중앙아시아 내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 박물관으로, 각각 2003년과 2011년에 박물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한국실을 설치하여 전시 및 공연, 교육을 하고 있다.
항일정신이 담긴 한국 최초의 영화 ‘아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아리랑 음악 붐이 일어나게 한 계기가 되었고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서 발매된 아리랑 SP음반만 43개로 매년 4종의 아리랑 음반이 발매되었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세계제2차대전 패배 후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6·25전쟁을 통해 일본은 UN군들에게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면서, 아리랑 기념품과 아리랑 음반은 주요 품목이 되었는데 1945년에서 1955년까지 확인된 아리랑 수록 음반만 19종이 되며 한국과 정식수교를 맺고 1980년대까지 발매된 아리랑 수록 음반도 21종이나 된다. 이번 전시에는 근현대 일본 사회 최초의 한류라고 볼 수 있는 42종의 다양한 아리랑 음반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리랑과 관련된 유형의 자료뿐만 아니라 실제 아리랑을 부르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병행함으로써 재일한인들의 살아온 이야기 속 아리랑을 영상으로 채록, 전시하여, 아리랑은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사는 어느 곳이나 있는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현지 교민들에 대한 조사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시가 열리는 미국, 러시아 등에서도 수행할 계획이며 향후 한국인들의 해외이주사와 생활사 조사에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4년은 한국인이 러시아로 이주하여 ‘고려인’이 된지 150주년 되는 해이다. 1863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출발한 13가구 60 여 명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이 그 시초. 하와이 농업이민보다 39년이 앞선 최초의 집단 해외 이주,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이주를 인정한 1864년을 기산점으로 삼아 올해 150주년이 된다. 당시 어렵게 살았던 고려인들의 모습이 담긴 1900년대 초반 발간 사진엽서들도 이번 전시에 공개된다. 러시아 정부는 만주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비슷한 외모의 고려인들이 일본의 잠재적 첩자가 될 수 있다고 오인했다. 결국 1937년 가을 124대의 화물열차에 고려인들을 태워 우즈베키스탄에 76,525명, 카자흐스탄에 95,256명 등 17 만여 명을 중앙아시아 황량한 대지로 강제 이주 시켰고, 강제이주 과정에서 2만 5천명이 세상을 떠나는 등 가혹하고 참담한 고려인의 역사가 시작됐다. 척박한 중앙아시아에서 맨손으로 땅굴을 파고 민족적 수모를 삭여가며 몸을 일으킨 고려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아리랑을 부르는 전시를 준비했다. 때마침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 중 동포간담회를 갖고 강제 이주라는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 중앙아시아 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고려인들을 격려하였으며, 고려인 미술가들의 전시회도 관람하는 등 국가적으로 고려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정선아리랑연구소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거주 고려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와 아리랑을 채록하여 전시에서 영상으로 소개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비교적 젊은 세대인 고려인 최 이고르(45세)는 어릴적부터 잔치 때마다 아리랑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아리랑을 부르거나 들으면, 고향의 산과 들이 생각난다고 어렸을 때부터 말해주었고, 그도 자녀들에게 “아리랑이 뭐라고 얘기해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 말씀하고 똑같이... 아리랑은 이거 우리 제일 중요한 노래다. 꼭 알아야 할 노래다. 같이 꼭 불러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 하고 있다. 70대의 장 에밀리아 안드레예브나 할머니는 아버지가 전북 남원 출신. 중국과 연해주를 거쳐 살다가 강제이주로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하게 된 사례이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고려인들은 모이면 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하면 누구든지 떠나보내고 서로 그리운, 그거지요. 아리랑하면 그저 옳다 우리는 여기 와 떨어져 따로 살며 그래도 아리랑 부르고 있으니 조선이나 한국이나 그립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리랑을 부르면 한국이 그리워요. 어머니 생각도 나고 여러 생각이 나죠.” 조사를 통해 만난 고려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리랑은 고향의 노래, 한민족의 노래라고 말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부모세대들이 울면서 아리랑을 불렀지만, 먹고 살만하고 무엇보다 조국이 강대국이 된 지금은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한다.